도청 내 한 6급 주무관이 충남도 내부 게시판에 ‘얄팍해진 이성, 너덜너덜해진 열정, 봄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화제다.
충남도의 5급(사무관) 승진 대상자 선정 결과를 놓고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만 10년이 지났지만, 사무관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6급 주무관이 공개적으로 반발하자 너도나도 ‘승진 대상 선정기준이 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충남도(도지사 양승조)는 최근 올해 상반기 5급 승진예정자 34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정년퇴직과 공로연수, 휴직 등으로 결원이 예상되는 5급을 대상으로 심사승진 대상자를 선발했다. 충남도는 직렬별 승진 예정 인원의 법정 배수 이내에서 업무역량과 근무성적 평정 순위, 역량교육 이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올 4월 이후 지방자치인재개발원에 입교해 6주간 교육을 받은 후 승진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도청 내 한 6급 A 주무관이 충남도 내부 게시판에 ‘얄팍해진 이성, 너덜너덜해진 열정, 봄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A 직원은 이 글에서 90년대 초, 9급으로 임용돼 10여 년 후 7급으로 도청으로 전입했고 2009년쯤 6급으로 승진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이후 4개 부서를 돌다 3년 전 지금의 실·국에서 5명의 과장을 모셨다”고 밝혔다. 10년 만에 7급으로 승진 후 다시 10년간을 6급으로 일했다는 설명이다.
A 직원은 “몇 해 전 갑자기 조직개편이라는 명목 아래 2년을 못 채우고 일방적으로 다른 과로 전출됐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업무에만 충실하다가 인사 고충 상담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자 ‘참으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사와 관련 “그래도 ‘먼저 치고 나가는 후배 공무원보다 너무 뒤쳐지지 않게 배려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일했다”며 “하지만 만 10년이 지나도 후보자 명부에 끼지 못했다”고 이번 인사에 대한 소감과 자괴감을 표시했다. 충남도의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평균 소요년수는 약 9년이다.
그는 “연공서열(근속 연수에 따라 지위가 올라가는 일)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며 “조직 내부의 일을 전담하는 직원들은 사업부서에 배치된 직원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30여 년 공직생활을 했지만 최근 3년 동안 조직에 대한 신뢰가 일순간에 무너진 느낌”이라며 “의욕도 없고 일하고 싶지 않은데도 여러 삶의 무게로 조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글은 “너덜너덜 해진 열정을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할지 또다시 자문한다”고 끝맺고 있다.
글이 게시되자 조회 수가 수 천 건으로 급등했고, 토론 글이 줄줄이 달렸다. ‘공감하지 못한다’는 글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공감을 표시했다.
한 직원은 공감 댓글에서 “안타까운 건 공정한 잣대로 승진 여부가 이뤄지지 않고 줄서기와 아부, 정치력, 인맥, 어쩌다 좋은 부서에 있었다는 이유로 운명이 엇갈린다”며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람은 잘 나가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다른 직원도 “충남도는 ‘현장이 최우선이다’고 말하지만, 승진과 성과에서는 15년 내내 ‘현장은 맨 나중이다’를 실천하고 있다”며 “제발 현장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충남도는 학연과 지연, 자리(부서)도 중요한 것 같다’ ‘저는 소방공무원 6급인데 많은 일로 소방조직의 초석이 됐지만, 진급은 아예 제외해 놓았다’는 푸념 글이 많았다.
7급 합격했는데 ‘장애인’ 이유로 9급 임용…“지금이라도 바로 잡아달라”
게시판에 올려지진 않았지만 7급에서 사무관 승진까지 26년이 걸린 다른 사례도 있다. 충남도 공무원인 정아무개씨는 지난 1993년 충남도가 실시한 7급 행정직 공무원 공개경쟁 임용시험에서 합격권 안쪽의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불합격 처리됐다. 장애 때문에 군대를 못가 다른 응시자들과 달리 병역 가산점(평균 5점)을 받지 못해 밀려난 것이다. 당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장애인을 공개채용 인원의 100분의 2 이상 채용하도록 시험을 쳐야 한다’는 당시 장애인고용촉진법 규정을 적용할 경우 당연히 합격대상이기도 했다.
정씨가 청구한 행정소송에서 대전고법은 “충남도는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충남도는 정씨를 행정 7급이 아닌 기능 9급 자리에 임용했다.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도, 직급도, 직종도 아니었다.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법원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보낸 자리였다.
충남도의 상고로 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은 시험을 본 지 7년여가 지난 2000년 11월에서야 나왔다. 이에 따라 충남도는 정씨를 2001년 6월, 7급 행정직 공무원으로 임용했다. 하지만 시험을 본 1993년으로 임용시기를 소급하지 않고 신규임용으로 처리했다. 9급에서 7급으로 승진한 것으로 처리하는 방법으로 9급 기능직공무원의 호봉과 경력을 승계시켰다. 정씨는 “충남도가 비장애인이나 군제대자보다 최소 6년 이상의 불이익과 차별을 준 인사를 했다”며 “지사가 바뀔 때마다 차별 시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씨와 같이 지난 1993년 충남도 7급 행정직에 합격, 임용된 동료들은 모두 사무관으로 승진된 지 오래다. 반면 정씨는 최근 발표한 5급 승진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7급 행정직 시험을 본 때로부터 사무관 승진까지 무려 26년이 걸렸다.
정씨는 지난해 충남도지사를 상대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1995년 7급행정직공무원신규임용처분 의무불이행 부작위 위헌 확인' 행정소송을 청구했다. 지금이라도 1995년 '9급 기능직'으로 임용한 것을 '7급 행정직 임용'으로 바로잡아달라는 요구다.
이에 대해 충남도 관계자는 “정씨의 경우 1993년 1‧2차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3차 시험(면접)을 2000년 12월에 본 것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건은 정씨가 군 제대자 가산점제도의 위헌법률심판을 제기,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과 인용결정을 받았고, 지난 2000년 대법원 승소판결과 대전고법의 확정판결로 원처분 시점 당시(1993년)로 소급해 무효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1993년 7급 행정직 합격자를 2001년 신규임용으로 처리한 충남도의 인사 조치에 대한 법원 판결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