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두고 매일 두시간씩 자신보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유모씨가 한낮의 잠에 취해있다.
가엾은 영혼에 안식을 주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육체에 평안한 휴식을 주는 일보다 고귀한 것이 있을까.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생을 정리하는 이들에게 ‘천안 사랑의 호스피스’(회장 심석규) 역할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천안 호스피스의 평안의 집(구성동 소재)은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를 자임, 1년 동안 40명 가까이 죽음을 인도했다. 현재도 6명의 환자가 대기상태로 저마다의 사정과 한을 갖고 호스피스의 사랑과 진료를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만신창이 몸으로 이곳에 들어온 신모(70) 할아버지는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소원을 성취했다. 젊은 시절, 안 해본 일 없이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온 인생. 이제는 모두 부질없음을 얘기하는 할아버지는 손자를 보고 눈감는 것이 소원이었다.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에 아들은 이를 악다물며 외면했지만 혈육의 정이 진한 탓일까.
호스피스의 노력과 아들의 허락으로 며칠 전 손자만 이곳을 다녀갔다.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어. 젊을 적…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었지.” 회상하는 그의 눈이 어느덧 회한으로 얼룩졌다.
뇌암으로 들어온 윤모씨(여·65)도 가족사랑을 톡톡히 받고 있다. 어려서 아들을 버린 그녀에게 며칠 전 아들 내외가 다녀갔다. 아무리 자식을 내팽개친 부모라도 자식은 죽음앞에 초라히 서 있는 엄마를 내팽개칠 수가 없었는지, 아들만은 한번씩 얼굴을 내밀었다. 피가 진함을 다시 한번 느껴지게 만드는 모습이다.
유모씨(남·30)는 뇌종양으로 두 번이나 수술했다. 마지막 한 번 더 하려는 것을 유씨가 말렸다. 더 이상 죽음앞에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 삶에 연연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청각도 시각도 다 잃었지만 느낌과 손바닥 글씨를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3개월 전 호스피스 봉사에 뛰어든 남상훈 실장은 “죽음 앞에 있는 사람 같지 않을 정도로 유머도 잘하고 긍정적”이라며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에 하루 두 시간씩 매달리는사람”이라고 귀띔. 얼마 전 신학대 학생들이 찾아와 명예졸업장도 전해주고 빨간 모자도 선물했다.
성모씨(남?48)는 한때 교사였으나 아내의 외도로 찾아온 스트레스에 몸부림치다 뇌출혈을 일으켰다. 병원진단은 ‘타인의 도움 없이 생명유지 불가능.’ 그의 어머니가 뒷수발을 들었지만 얼마 전 운명을 달리했고 남은 것은 중1·중3의 딸들.
그래도 찾아와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주위 봉사자들은 효녀라고 입을 모은다. 18일(화) 점심시간. 심석규 회장(남천안 제일의원 원장)은 장작개비처럼 마른 성씨의 몸에서 피맥을 찾지 못해 진땀. 겨우 찾아내 한 숟가락 정도의 혈액을 받아내는데 성공했으나 시간이 많이 지나 점심을 걸러야 했다.
이들 외에도 김모(75) 할머니는 성환에 살던 독거노인으로 폐암을, 박모(65) 할머니는 자궁 말기로 호스피스의 극진한 진료와 사랑을 수혈받으며 죽음을 맞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의 기구한 운명을 듣다 보면 오히려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며 인생을 배우게 된다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