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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으로 사는 공무원

등록일 2003년03월2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공무원 중에 제일 튼튼한 사람이 누구게? 누군가가 묻는다면 공무원 대부분이 ‘수도업무 검침자’라 서슴없이 답할 것이다. 이같은 인식 속에 공직사회에서는 수도검침 업무가 발품 파는 가장 궂은 일로 치부, 꺼리는 근무의 대명사가 됐다. 한 달 내내 이뤄지는 수도검침과 고지서 발부. 이제 끝났는가 싶으면 또다시 시작되는 다음달 업무. 어지간해 건강하지 않고는 배겨나질 못한다. 성정1동에 근무하는 이인희(38)씨는 수도검침자 중 베테랑이다. 92년 공직사회에 입문, 신안동 수도검침 업무로 처음 시작한 후 지금껏 수도검침만 맡고 있다. 게다가 94년 성정1동으로 옮긴 후 수도검침 업무를 또다시 맡았다. 10년째 한 우물만 파고 있는 그는 타 공무원이 보통 2~3년에 한번씩 순환보직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찌 보면 지긋지긋 할 수 있는 일. 그러나 첫 대면에서부터 강건한 기운이 넘친다. “그냥 내 일이다 생각하고 하루 하루 성실하자는 생각이에요. 힘들긴 하지만 인이 박혔나 봐요.” 그가 맡은 가구수는 2천 가구로, 보통 1천5백 안팎의 가구를 맡는 것을 감안하면 업무량이 많고, 게다가 구도심의 단독주택이 많아 걷는 양이 상당하다. 어느날 자신이 걷는 양이 어느 정도인지 호기심이 생겨 그는 만보기를 차고 재보니 하루 평균 10여㎞에서 많게는 20㎞를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계속 걷는 것이 아닌, 대문 안 땅바닥 속에 있는 계량기를 보고 검침하느라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걷는 양이다. “이 일만이 전부는 아니죠. 보통 한두가지 다른 업무도 병행하고 있어요.”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서인지 이씨는 별 어려움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비나 눈이 와서 검침하기가 어려운 날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다른 업무를 보고, 다음날은 각오하고 뛰어다녀야 합니다. 촉박한 시간으로 짜여 있는데 하루 헛탕친 것은 바로 만회해야 하니까요.” 그는 이 업무를 보며 노하우도 쌓았다. 대문이 잠겨있을 경우 부재중 통지서를 부착하는데, 이를 무시할 경우에는 지난달 사용량을 적절히 뽑아낸다. 다음번 방문 후 발생하는 약간의 차이는 집주인에게 이해를 구하는 방법이다. “저희의 열악한 근무 형편을 감안해 올해부터 매월 8만원씩의 민원수당을 받고 있어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근무 형편을 이해해 준다는 생각에 고마운 생각도 들죠.” 9년째 된 이씨는 머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 누구도 싫어하는 수도검침. 그래서인지 한번 맡은 담당자는 다른 곳에 가도 역시 수도검침 업무가 주어지고 있다. 업무숙지를 위해서는 짧게 3개월에서 6개월간 고생문이 열려있다. ‘성실’을 머리 속에 꼭꼭 담아놓고 힘들 때 한번씩 떠올리며 스스로 위안하는 이씨의 꿈은 뭘까. 수도검침 업무 벗어나기, 아니면 수도검침을 힘들지 않고 처리하기…. 기능9급이라는 속칭 ‘말직’이지만 어떤 공무원도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함이 그의 철학 속에 서려있음을 볼 수 있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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