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가을이 오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듣기가 힘들다. 돌이켜 생각하면 예전엔 참 할 일이 없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마음은 풍요롭고 여유로웠다. 가난한 생활에서 ‘외도’라는 게 기껏 책을 읽는 거였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은 때, 친구들이라도 만나야 제기도 차고 구슬치기도 하는데 집에 있으면 소일거리가 ‘책’밖에 더 있겠나.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확 바뀌었다. 컴퓨터가 있고 핸드폰이 있으니 아이들은 심심할 시간이 없다. 게다가 집 앞만 나가면 영화관도 있고, 분식집도 있고, 하루종일 구경할 쇼핑센터가 널려 있다. 어른들도 각종 취미활동으로 쉴 틈이 없으며, 각자 자신이 소유하는 차가 있으니 여차하면 전국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문화적으로 풍성한 시대에 ‘책’은 마니아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가을이라 해서 ‘독서의 계절’ 운운하는 것은 얼마나 고리타분한 말인가.
책은 지식의 창고라 불리었건만, 지금 지식의 창고는 ‘인터넷’이 돼버렸다. 그러니 책의 가치를 어디다 둘 지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한 예로 ‘책을 읽는 것은 사색의 문을 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의 창고라는 인터넷에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특징이다. 영화를 보며, 때로는 대화를 하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겠지마는 사색에 빠져드는 일은 책을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요즘 사람들은 ‘대충 대충’ 산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늘을 한번 여유있게 올려다본 일도 없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지긋이 본 적도 없다. 왜 사는지, 돈은 왜 버는지, 어떻게 써야 좋은지, 가족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며칠 전 거리를 걷는데 앞서가는 여학생 세 명이 재잘재잘하며 가는 것이었다. 가까이 지나치면서 욕이 반은 됨직한 그들의 대화에 결국 혀를 찼다. 아이들이 욕이 욕인지도 모르고 서로에게 마구 해대면서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인터넷 등을 통한 지식의 수용은 다독과 다작은 가능할지 모르나 ‘다상량’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을 놓치고 있다. 많이 벌고 쓰면 행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삶의 성찰이 없다면 그 행복도 의미가 없는 것.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그로부터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가 시작된다. 자신을 많이 알수록 진정한 행복도 맛볼 수 있기에, 이 가을 좋은 책을 선정해 읽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수신’하기에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