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방읍 중리 유해발굴 장면. 올해 배방읍 중리에서 발굴된 208구 유해 감식결과 어린아이를 비롯해 17세 이하 미성년이 58명 이었고, 나머지도 여성과 노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한국전쟁 당시 충남 아산시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현장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부터 여성, 노인까지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했다. 그 증거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서 발굴된 유해와 유품에서 드러났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는 주로 20~30대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올해 배방읍 중리에서 발굴된 208구 유해 감식결과 어린아이를 비롯해 17세 이하 미성년이 58명 이었고, 나머지도 여성과 노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유해 발굴 현장에서 60여 개의 비녀가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산시는 올해 배방읍 중리에서 208구의 유해를 수습한데 이어, 내년에는 탕정면 용두리 산54번지 일원에서 유해발굴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탕정면에서는 최소 800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전쟁 당시 탕정지서와 면사무소 곡물창고로 연행했다가 용두리 뒷산에서 처형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산시유족회에 따르면 현재 탕정면 희생자의 유족은 70명으로 확인됐다. 희생자에 비해 유족이 적은 이유는 노인부터 갓난아기까지 부역혐의자의 가족 전원을 무차별 학살했기 때문이다. 또 살해 도구로 총칼 뿐만 아니라 농기구와 죽창 등을 사용해 더욱 끔찍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지난 5일 김장호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아산유족회장을 비롯한 유족,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오세현 아산시장과 면담했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아산유족회장을 비롯한 유족,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오세현 아산시장과 면담을 통해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아산시의 지원을 요청했다.
유족들은 지난 70년간 죄인처럼 숨어 지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아산지역은 노인부터 갓난아기까지 부역혐의자의 가족 전원을 무차별 학살했다며 억울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김장호 유족회장은 “억울하게 희생당한 유족들은 지난 70년 동안 죄인처럼 숨어 지냈다”며 “제대로 술 한 잔 올리지 못하고, 남몰래 등산객을 가장해 찾아왔다가 산에 술을 붓고 돌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가을 시굴을 거쳐 내년 봄에 반드시 발굴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과 그 유족들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말했다.
오세현 시장은 “유해발굴 사업은 정부차원에서 국가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현재 ‘과거사청산특별법안 및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 국비지원은 어려운 상황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이어 “희생자와 유족들의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내년 탕정면 유해발굴사업은 아산시가 지원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절차를 밟아 적극 지원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등에 따르면 아산시에는 염치읍 대동리 새지기(황골), 산양1리(남산말) 방공호, 선장면 군덕리 쇠판이골, 탕정면 용두1리 뒷산, 신창면 일대, 배방읍 남리, 배방산(성재산 현 신도리코 자리), 수철리 폐금광 등 8곳에서 민간인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배방읍 수철리 폐금광(중리)은 올해 208구의 유해발굴을 마쳤으며, 내년에는 탕정면 용두1리 뒷산을 발굴할 예정이다. 나머지 지역은 지형변경이나 도시개발 등으로 학살매립지가 훼손되거나 장소를 특정할 수 없어 발굴이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민족문제연구소나 유족회 등에서는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전수조사를 통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