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빵빵거리는 경적소리. 현대인의 바쁘고 찌든 생활이 도로를 달리는 차와 함께 시작되고 끝난다.
반복되는 일상의 피폐. 한자락의 여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대변하는 천안 도심 한복판. 5분으로 ‘천년의 여유’를 전해주는 곳이 있어 화제다.
흔한 전단지 하나 만들지 않았지만 드나드는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상정 네거리 농협 뒷편의 60평 공간. 98년 자리잡은 한국 차문화협회 천안지회다.
밖에서는 대나무로 정결한 치장에 여념 없고, 내부는 채 정리되지 않은 각종 물건들이 산적해 있다.
“요즘 공사중이라 편히 맞질 못해 죄송해요.”
반갑게 맞이하는 전재분(54) 회장의 겸손한 말 한마디가 주변의 어수선함을 압도한다.
“이것은 도자기 전쟁으로도 불리는 임진왜란 당시 유명했던 심수관 도공의 다기 작품(사진)을 그 후손이 재현한 것이고요, 이쪽은 우리나라에 3명뿐인 시기장 무형문화재 중 김정옥, 천한봉 선생 작품이에요.”
전 회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더욱 귀해 보인다.
전 회장의 차도는 16년 전인 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혼 후 취미생활로 꽃꽂이를 시작했어요. 정확히는 성당에 꽃을 봉헌하겠다는 생각으로 배웠죠.”
그는 몇 년의 배움에서 ‘꽃과 차는 일격일품이요, 꽃과 대화는 이격이품, 꽃과 술은 삼격삼품’이라는 것을 듣고 차에 대한 관심의 계기가 됐다고. 꽃에 깊어지니 차에 이른 것이다.
시나브로 그의 차에 대한 배움이 일취월장.
“차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할 말 없지만 차도에 관심 갖기 시작하면 배움에 그 끝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악양 석용운 스님은 하나의 잎으로 1백여가지의 차 맛을 일궈내기도 하니까요.”
그는 일반인에게 흔히 접하는 차나무 잎을 예로 들었다.
“차 잎을 따뜻하게 쪄서 생채기를 내고 이를 몇 번 반복하면 잎속의 액기스가 겉으로 흘러나옵니다. 이 한잔의 차는 밀감 세 개에서 얻을 수 있는 비타민C의 양과 같답니다. 불발효한 상태를 녹차라고 한다면 차 잎을 1백% 발효시킨 것이 홍차이고 50%는 오룡차, 30%는 황차, 15%는 청차라고 합니다.”
배움이 깊어지다 보니 성격도 개선됐다. 어렸을 적, 은행가였던 아버지는 ‘너는 되통스러워 다도는 하지 마라’고 하셨다. 활달한 O형 혈액형에 다소 과격했던 그를 다스린 건 오히려 ‘차도’였다.
“아마도 차가 없었다면 정신적으로 주체 못하는 화를 삭히지 못했을 겁니다.”
차에 대한 배움이 깊어지자 91년 3월 차문화협회 천안지회를 개설하고, 이후 청주지부, 경기지회, 충남지부도 살림냈다. 천안·서산·청주문화원을 비롯해 전통체험학교, 충효단 연맹교육, 여성회관, 복지회관 등에서 지금껏 1만여명의 제자를 길러냈으며 삼거리문화제와 김부용 추모제, 예산 추사묘 헌다례 등도 주관한다.
“지난해 5월부터 ‘전통문화연구회’를 개설했어요. 누구든지 차에 대한 전통문화를 배우고 싶다면 찾아오세요. 차 유래가 전해지는 가야시대부터 함께 공부해야 할 거예요.”
문의:☎576-0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