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순 안 (48·신창면 창암리)
방안은 온통 대변냄새로 가득 찼다.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의 변 냄새를 그 어떤 이상한 냄새에 비할 수 있으랴.
올해 나이 81세인 설사준(여)씨는 치매상태에 이른 지 3년이 넘었다.
치매에 이르기 전 설 노인은 시력이 나빠 5m 앞도 분간 못하는 상태에서 느낌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할머니였다.
그런 설씨는 이제 입고 있는 옷이 올가미인줄 알고 자꾸 찢고 자신의 변을 들고 방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벽에 칠해 놓곤 한다.
이런 설씨 곁에 조순안(48?신창면 창암리)씨가 함께 한 지 벌써 5년째다.
설 노인의 은혜를 입었던 친인척과 수양딸은 다 떠나고 이웃에 살던 조순안씨가 노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처음 시집 와서 할머니를 알게 됐는데 양로원이며 이웃이며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봉사하는 양반이었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도와줬는데 이젠 누구 하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분이 될 줄이야”라고 조씨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설 노인이 혼자 산다는 것을 알았던 새댁시절 매달 노인의 집에 방문하면서 밑반찬이나 속옷 등을 챙겨주곤 했다. 조씨의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갈 무렵에도 1년에 두세 번은 찾아봤는데 어느 날 재산도 모두 잃고 살 집도 없어진 노인을 보고 “우리 집에서 사시지요”하고 한마디 건넸던 것이 동거의 시작이었다.
설 노인이 아니더라도 조씨는 시댁 어른의 병 수발을 경험한 터여서 노인을 모시고 사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어려운 사람 보면 도와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고 내 애들도 어른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 보고 배우면 좋잖아요. 그래서 살게 됐지요”하며 겸손해 한다.
조씨는 그런 자신이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며 손을 내젓고 아산시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 김원천씨를 더 큰 사람으로 극찬했다.
설 노인이 처음 조씨의 집을 찾았을 때는 시력은 잃었지만 총기가 있었다. 시력을 완전히 잃으면 장애인 1급 판정이 돼 수급을 더 탈 수 있어 설 노인과 조씨는 면사무소와 아산시청을 방문했지만 아무도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다. 3년 동안이나 관공서 주변을 맴돌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때 집으로 이동목욕봉사를 왔던 아산장애인복지관 김원천 사회복지사가 절차를 밟아주겠다며 병원으로 데려가 3년 동안 판정받지 못했던 일을 일주일만에 해결해 주었다.
“이런 이웃이 있으니 사는 거죠” 하며 조씨는 김원천씨를 극찬한다.
김원천씨는 오히려 조씨를 칭찬한다.
“치매 걸린 사람을 자기 가족보다 더 살뜰히 보살펴 주는 정성이 더 훌륭하다”며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봉사를 멈출 수 없다”고.
조씨는 “다 각자의 집에 살지만 마음이 서로를 도와주는 곳에 있으니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며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도와주고 협력하면서 욕심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소망을 펼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