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 배방읍 설화산 인근에서 학살당한 민간인 유해가 208구 발굴됐다.
“수습된 유해 208구 중 비녀만 89점 나왔다. 그 주변에는 구슬 등 아이들 장난감이 다수 발견됐다. 미성년 어린이 유해만 58구가 수습됐다. 아기 업은 어미를 죽였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온 몸으로 감싸 안은 가족들을 무차별 죽였다. 치아가 닳고 닳은 노인의 해골도 수북하다. 설화산은 부녀자와 아동, 노인에 대한 학살 현장이었다.”
“이제라도 억울하게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영혼을 달래고, 부역자로 낙인찍힌 희생자들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민간인 800여 명이 학살당한 참담한 역사적 진실 앞에 아산시민 모두는 상주가 될 수밖에 없다. 상주 아닌 시민이 누가 있겠는가.”
아산시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 86-1번지 설화산 일대 제5차 한국전쟁기 민간인희생자 유해발굴조사 결과 보고대회를 지난 5월29일 아산시청 상황실에서 진행했다.
이날 보고회는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일원에서 지난 2월22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3개월간 진행된 한국전쟁 당시 부역혐의를 받고 희생당한 민간인 유해발굴에 대한 진행상황을 이야기했다.
4.12~23, 유해 208구 중 여성 89명, 어린이 58명
박선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이 희생자 유해를 감식하고 있다. 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은 발굴된 유해를 수습해 아산시 공설봉안당에서 안치식을 진행했으며, 안치식 후 유해와 유품은 세종시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추모관’에 봉안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월20일부터 4월1일까지 설화산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곳에서 발굴된 희생자와 유품은 4월12일부터 23일까지 아산시 공설봉안당에서 감식을 진행했다. 조사결과 이 지역에서 최소 208명의 유해와 551점 이상의 유품을 확인했다.
희생된 유해는 한국전쟁 당시 아산지역 부역혐의사건의 희생자로 상당수가 부녀자이고, 미성년의 아이들이었다. 최소 208명의 유해 중 어른이 150명, 미성년의 아이들이 58명으로 추정된다.
유품은 무기류와 개인소지품 등이 다수 발굴됐는데, 무기류는 M1과 카빈이 대부분이었다. 개인소지품은 비녀, 귀이개, 단추류, 버클, 고무신을 비롯한 신발류,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보이는 구슬 등이 발견됐다. 여성용 비녀도 최소 89점인 점으로 볼 때 희생자 상당수가 부녀자였음을 알 수 있다.
배방 발굴조사에는 아산시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이 있었다. 이창규 아산부시장은 “이번 발굴을 계기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과 입법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유족들의 고통과 상처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선주 공동조사단장은 유해발굴 및 감식결과 보고를 통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특히 학살현장에 대한 보존과 희생자 규모, 사건의 성격과 상징성에 맞는 사건명을 다시 붙이는 동시에 철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동조사단의 발굴기간 내내 현장에서 함께한 김장호 아산유족회장은 이번 발굴조사를 진행한 아산시와 공동조사단에 대해 거듭 감사를 표했다. 배방 설화산에서 수습된 유해와 유품은 지난 5월14일 아산시 공설봉안당에서 안치식을 진행했으며, 안치식 후 유해와 유품은 세종시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추모관’에 봉안했다.
아산서 억울한 죽음 800여 명 아직도 방치
배방면 설화산에서 발굴된 비녀만 89점이며, 어린이 유골도 58구 수습했다. 희생자 상당수가 부녀자와 어린이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발굴조사단에 따르면 충남 아산지역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 명이상이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당했다. 특히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는 최소 150~3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70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208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이밖에도 아산시에는 배방 설화산 외에도 7개 지역에 민간인 희생자가 더 있는 것으로 증언됐다. 이들에 대한 수습도 중대한 현안으로 남아 있다.
공동조사단이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많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들의 위령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제정돼 왔다. 아산시는 2015년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2017년 시굴조사와 이번 발굴조사에 아산시 예산을 집행해 전국 첫 모범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공동조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광산이나 이름모를 산 속에 수십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돼 왔다고 밝혔다. 그나마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일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해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했다가 2016년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옮겨 모셨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끝난 후부터는 국가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동조사단은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낸 인권국가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5월29일 오전 11시 아산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아산 배방 부녀자 학살사건 유해발굴 보고회에는 약 100여 명의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해 당시 참상을 기억했다.
5월29일 오전 11시 아산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아산 배방 부녀자 학살사건 유해발굴 보고회에는 약 100여 명의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해 당시 참상을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