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서민의 토속문화 유산을 발굴, 보존해 후세에 전승하고자 풍세면 보성리에 ‘민학전가’를 세운 배방남씨. 그의 노력으로 지난 정월 대보름 맞이 ‘제4회 장승축제’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수십종의 장승들이 몰려든 1백여명을 맞이, 행사는 풍성하게 치러졌지만 이들 부부의 그동안 고생과 속타는 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담한 뒷산과 마을과 들판이 내다보이는 민학전가는 작년까지만 해도 도로 옆에서 축제를 치러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협소함도 문제여서 작년 3월 초순, 인근 5백평 부지를 임대해 축제 전 겨우 모양새를 갖출 수 있게 됐다.
“백제문화 재현에만 매달린 우리가 돈이 어딨어요.”
목수장이처럼 손수 나무를 깎고 기둥에 매달려 천장을 손질했다. 미끄러운 지붕에서 작업하다 떨어져 아직도 시큰한 어깨며 심지어 손에 못질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돈만 있었으면 이렇게 까지 고생은 안 할 터였다.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들어가는 돈은 쉽게 1억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말이죠. 세상물정 모르고 살다 카드를 써봤는데 그것이 참 요상해요. 돈 떼먹을 것도 아니고 수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작품들도 있는데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돼버린 거예요.”
대화가 장승축제에서 자연스레 카드로 옮겨지자 배방남 관장과 처는 쌍심지를 켜고 답답함을 호소한다. “연체 2개월에 한두번 전화가 안 된다고 덜컹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놓는 게 어딨어요. 그것도 고작 200~300만원 가지고 말이죠.”
그는 매일 작업장에 나와 민속보존관을 짓다 보니 방안에 있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고 푸념한다. 게다가 얼마 전 지붕에서 휴대폰 받다 떨어져 ‘일할 땐 안 받겠다’ 다짐했고, 기계소리도 보통 큰 게 아닌데다 기계사용이 미숙해 음성녹음은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다.
여러 상황이 맞물려 그는 신용불량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모 대학은 내 작품 하나에 5000만원 줄 테니 희사하라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민학전가를 보고 몇 억 주겠다는 이도 몇 있어요. 여태까지 일에만 매달려온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닙니까.”
그의 처도 “전화가 안 되면 찾아오면 될 것을 우리는 까맣게 몰랐다가 된서리를 맞았어요. 한 곳에 불량자로 낙인 찍히니까 이곳저곳에서도 불량자로 올리며 돈 달라고 난리예요. 지금은 이자는 물론 원금도 다 갚은 상태입니다.”
작품 한두점만 팔아도 대부분 처리할 수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전통문화를 보존?계승한다는 외고집에 ‘형편대로 팔아서는 안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처도 한때는 남편의 세상물정 모르는 외곬수에 ‘왜 편히 살지 못할까’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해하는 처지다.
경제적인 처지를 말하다 보니 천안의 문화의식이 전반적으로 낙후됐다는 말도 진지하게 꺼내 놓는다. “우리는 이 민학전가를 영구히 계승, 보존할 곳을 찾고 있어요. 그것이 정부든 시든, 개인이든 간에 상관없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마음놓고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약간의 생활비만 대주면 되죠. 그것이 우리의 바람이에요.”
이들 부부는 말한다. “우린 아까울 게 없어요. 내가 없어도 더 없는 사람들을 위해 도울 수 있는 ‘나눔의 배려’가 얼마나 좋습니까. 내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가식이 없는데 괜히 헐뜯고 악소문만 퍼뜨리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