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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역사 단죄하고 기억하자”

등록일 2018년04월1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엄마와 아기의 것으로 보이는 뼛조각이 흙 속에 섞여 있다. 엄마가 아기를 온 몸으로 감싼 채 총탄을 맞았거나, 아기가 엄마 등에 업힌 채 총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갈래로 자란 밤나무 뿌리가 30여 구의 유해를 관통하며 뒤엉켜 있다. 밤나무는 희생자의 시신을 양분삼아 거대하게 자랐다. 이 30여 구의 유해는 대부분 10세 이하의 어린이로 판명됐다. 어린 아이들만 따로 분리시켰다가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 

불에 타다 남은 옷감이 유해에 붙어있다. 총살 후 시신들을 불태웠다는 증언을 뒷받침 하는 증거다. 어린아이부터 부녀자 노인까지 겹겹이 쌓인 유해도 발굴됐다. 일가족 몰살로 추정된다. 

옥비녀 꽂은 20대 여성의 유해도 발굴됐다. 흙 속에서 치아가 가지런히 드러난 해골 위에 연녹색 옥비녀가 부러진 채 놓여 있었고, 손가락 뼈에는 은가락지가 끼워져 있다. 

여성의 신발과 아이의 신발이 나란히 발굴되기도 했다. 신발 속에는 엄마의 것으로 보이는 발가락뼈가 그대로 드러났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끌려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 바탕 집단학살을 저지른 후 시신을 이리저리 내던지고, 굴리고, 쌓아서 불 질러 태웠을 현장이 선명하게 보인다. 

흙을 걷어낼 때마다 뼛조각이 계속 이어서 나온다. 거꾸로 처박힌 해골, 해골을 관통하는 나무뿌리, 부러진 갈비뼈, 치아가 가지런히 보존된 해골, 치아가 듬성듬성한 해골이 나오기도 했다. 어린아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 삼대가 몰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도 나왔다.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 중턱.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던 피비린내가 진동했을 현장이다. 땅 속에 묻혔던 백골이 67년만에 당시 참혹했던 현장을 증언해 준다. 

한국전쟁민간인학살유해발굴 아산지역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아산에는 1950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 명 이상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2월22일부터 3월30일까지 1차 유해발굴 결과 150여 구의 유해에서 비녀 60개, 구슬과 종 모양의 어린아이 장남감 등이 무더기로 나왔다. 최소 30% 이상 여성과 어린이였다는 증거다. 이제라도 학살의 주범이 누군지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 공개하고 단죄해야 한다. 다시는 이와 같은 참담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편집국장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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