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 중턱에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던 현장이 68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조사단은 2017년 11월 배방읍 중리의 한 폐금광에서 민간인이 대규모로 학살당한 존재 여부를 밝혀냈다.
한국전쟁 당시 숨죽여 왔던 진실은 그동안 암암리에 마을 주민들과 유족들을 통해 증언돼 왔다. 당시는 자신의 아버지, 삼촌, 친인척과 이웃들이 끌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어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6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설화산 남서면 3부 능선자락에 위치한 폐금광 입구를 찾아냈다. 여러 증언들을 종합해 힘겹게 찾아낸 학살 현장은 67년 전 참혹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매립된 폐금광 앞에는 불에 탄 머리뼈 조각이 보였으며, 머리뼈 조각과 아래턱, 허벅지뼈와 정강이뼈, M1소총 탄피, 단추 등이 발견됐다.
한국전쟁민간인학살유해발굴아산지역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아산지역에는 1950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 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온양경찰의 지휘로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 태극동맹 등 우익청년단체가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다. 희생자는 청장년 남성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와 여성, 노인 등도 포함됐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951년 1월6일 경찰배방지서는 향토방위대와 함께 주민들을 창고에 가두고 전원 총살한 후 세일금광이 있던 뒷골터로 중3리 청년들을 동원해 매장했다고 한다. 이때 죽음을 맞은 희생자는 주로 온양, 배방, 신창 등의 주민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시굴을 마친 유해매립지에서 지난 22일 본격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던 5살 어린 아이는 70이 넘은 나이에 탄광 속에 방치됐던 아버지를 모시러 왔다.
수습된 유해는 한국전쟁 당시 아산지역에서 일어난 민간인희생자 사건을 밝히는 중요한 실체적 증거다. 당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이에 합당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