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맞는 설 명절이지만 갈수록 ‘명절보내기’가 힘겹다. 경기가 어려운 게 가장 큰 문제. 주머니가 비었는데, ‘쿨’하게 써야 할 곳은 왜 그리 많은지. 경제문제로 설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설 풍속도가 변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예전에는 ‘시댁’에서만 머물며 시간을 보냈지만, 요즘은 ‘시댁’과 ‘처가’를 함께 다녀오는 것이 새로운 풍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설 차례를 지낸 후 바로 처가로 향하는 모습에서 양성평등 문화가 엿보인다.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명절기간, 이들은 해외여행이나 개인시간을 보낸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하느라 분주했다면, 시장 등에서 ‘반’은 책임지는 모습도 익숙해지고 있다. 식혜나 떡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닭도 ‘치킨’으로 올려놓거나 없앤 집들이 생겼다. 차례상에 올리는 전이나 나물도 맞춤식으로 파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언제부턴가 돈만 주면 차례상을 차려주는 가게도 성황이다.
설 전날 내려와서 차례만 지내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고 보니, 설 음식은 차례 지낼 만큼만 하게 된다. 예전 같지 않고, 차례 지내는 시골에는 노인만 사는 경우도 많다. 음식을 남겨둬도 버리게 되니 아예 ‘적당히’ 하고 만다.
무엇보다 ‘명절풍습’이 사라졌다. 대표적으로 윷놀이가 있는데, 이마저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젊은이들은 PC방에 가버리고, 어른들은 당구장이나 술을 마시는 것으로 소일한다. 극심한 차량정체와 부모님이 도시로 올라온 상황 때문에, 또는 납골당에 모시기 때문에 성묘절차를 생략하는 집들도 있다.
점점 핵가족화 돼가고, 성향은 개인주의로 바뀌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온 집안이 모이는 명절 때만이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가 있어야 한다. 놀이문화가 단절된 세대간 관계를 이어주고, 형제자매들간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준다. 사라지는 것만 아쉬워할 게 아니라, 시대에 맞는 풍속을 세우는 것도 우리 시대의 할 일이다.
명절이 조상을 위한 제사라고 본다면, 그 의미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다만 1년에 한두 번 명절을 핑계로 모이는 것이라면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된다. 의미가 퇴색한 명절이라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명절로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러 파국으로 치닫는 갈등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