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10시 '검사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대전충남세종 공동행동'이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1일 오전 9시 50분. 100여 명의 여성인권단체와 정당 회원들이 모였다. 대전지방검찰청 정문 앞이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힘을 보태기 위한 자리였다.
바람결이 제법 차가웠다. 예정 시간인 오전 10시가 되자 순식간에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앞서 대전충남세종 지역 여성 인권단체는 긴급하게 '검사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대전충남세종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꾸렸다.
공동행동에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충청권역(20개소), 여성폭력방지상담소시설협의회(16개 단체),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15개단체), 대전여성단체연합(7개 단체), 대전·충남 인권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전충청지부, 양심과인권-나무, (준)세종여성, 노동당 대전광역시당, 정의당 대전광역시당이참여했다.
최근 구성된 '충남도 공무원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협의회(17개 단체)를 포함해 모두 81개 단체다. 여성 인권단체들이 이번 사안을 대하는 자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200여 명 모여 "진상 규명, 대책 마련" 촉구
서 검사는 지난 2010년 10월경, 한 장례식장에서 당시 법무부 간부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했으며, 그 후 사무감사 지적, 검찰총장 경고와 인사발령 등 업무상 불이익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지난 29일, 견디다 못한 그는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을 언론에 공개했다.
손정아 여성인권티움 상담소장은 "8년 간 고통받아 왔던 서 검사 앞에서 검찰이 법 정의와 국민 신뢰를 말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이어 "검찰 조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피해 검사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집요하게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현웅 변호사(대전충청민변 사무처장)는 "행위자로 지목된 검사는 교회도 안 다녔는데 어떻게 세례를 받았는지 의문"이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법을 집행하는 검사에게도 피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인데 힘 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겪었을 고통은 얼마나 컸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고 성토했다.
이병구 양심과인권-나무 사무처장은 "동료 검사들은 왜 성추행을 지켜보고도 현행범인 행위자를 그대로 나뒀냐"며 "이참에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방조자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공조직 내 성범죄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공직 비리수사처 내에 성폭력 특별반을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김혜영 천안여성의전화 대표는 "지난해 대전시에 이어 최근에는 충남도에서 공무원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지만 충남도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가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데 이어 도의회에서는 인권조례를 폐지하려 꾀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내 성폭력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검사의 용기에 답하는 방법 3가지
공동행동의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강조하려고 했던 점은 '피해검사의 용기에 우리 사회가 답하는 방법'에 맞춰져 있었다. 이들은 그 방법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제대로 된 수사'다.
다른 하나는 '검찰 내 성폭력 2차 피해 방지'다. 직장내 성폭력 사건마다 피해자에 대한 역고소, 보복 조치, 불이익, 직장 내 따돌림 같은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들은 "피해자에 대한 통념, 피해자 유발론, 피해자에 대한 의심, 꽃뱀 신화 등 더 큰 배제의 시선을 제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머지 하나는 '검찰 내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한 성찰과 구체적인 노력'이다. 공동행동은 "지난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성폭력 수사·재판시민감시단이 선정한 10개의 걸림돌 중 6개가 검찰이었다"며 "검찰 내 성평등 감수성을 향상하기 위한 성평등 교육과 내부 성폭력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 등 종합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전충남세종 공동행동이 내놓은 5 가지 처방전
공동행동이 내놓은 처방전은 ▲ 민간전문가를 포함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 공직비리수사처 설치 ▲ 성폭력 예방교육과 직장 내 성폭력 전수조사 등 종합대책 마련 ▲ 성 평등 교육을 전면 실시 ▲ 2차 불이익 조치 예방이다.
이들은 "검찰의 행보를 철저히 감시하고, 피해 검사와 함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규탄은 약 40여분 간 이어졌다. 회견을 마친 대부분의 회원들은 다시 충남도의회로 향했다. 충남도의회의 인권 조례 폐지 움직임을 규탄하기 위해 이날 오후 예정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