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떠나버리고 폐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원성천변 가구들.
지난 10일(월) 오전 11시경 원성동 불난다리를 돌아 트럭 두 대가 김백선(68)씨네 집 앞에서 멈췄다. 그곳에서 꼬박 40년을 산 김씨가 이사가는 날. 혼자 살아온 그의 살림살이라곤 세 보따리도 안 됐다.
“마침 근처 10평짜리 원룸이 있어 거기로 들어가는 거예요. 2000만원 보상 받아 2000만원짜리 세 들어가니 딱 맞습니다.” 6년 전 찾아온 뇌졸중으로,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그는 한때 새마을 지도자로 바쁘게 살아온 때도 있었다.
작년 8월의 수해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시는 본격 하천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20가구 주민들이 40여년 살던 정든 집을 떠나고 있었다.
김백선씨의 떠나는 모습을 뒤로 하고 원성천변 이주민들집 문을 하나 하나 두드려 봤다. 진 권씨네도 대답없고, 몇몇 집들은 벌써 형체도 없이 헐려 있기도 했다.
서정희씨네는 며느리가 아이와 함께 집에 있었다.
“보상비가 적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쩌겠어요. 싸워봐야 나올 것도 없을 테고…. 그러나 저러나 3개월째 집을 구하고 있는데 아직도 못 구해 걱정이네요. 시어머니, 시동생, 그리고 저희 다섯식구가 살려면 5개 방이 딸린 집을 구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설령 구했다 싶으면 두세달 기다려 달라는 거예요. 시는 당장 공사한다고 비워 달라는데….”
좋은 집은 ‘억’을 달라 해서 돌아나오고, 좀 싼 집은 너무 허름하다는 푸념도 섞어 놓는다.
현장을 다시 한번 돌아보다 유상근씨네 아줌마를 만났다. “살 날도 멀지 않은데 남의 집살이는 못할 것 같아요. 융자도 받고 해서 허름한 집이라도 마련하려다 보니 왜그리 비싼지….”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이웃집 살던 허창복(66?여)씨가 문을 연다. 그도 혼자사는 몸으로, 작은 원룸을 구해 모레 이사갈 거라고 말을 꺼냈다. 장암수술로 몸상태가 안 좋은 그는 “그래도 여기서는 세라도 놔서 다달이 30여만원을 받아 생활했는데, 이제 (돈)나올 때도 없다”고 한숨을 토해낸다.
현장을 돌아본 끝에 식구가 많은 서정희씨네와 유상근씨네만 살 집을 못 구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 차원에서는 이들을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이주정착금을 줄 수 있을까 알아봤지만 수몰지구 등에만 해당된다고 하네요. 하지만 주거대책비나 이사비 등을 통해 평균 5~6백만원을 지급하게 됐습니다.”
시 건설행정과 서강석 담당은 이 일로 두세번을 만났지만 매번 이들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듯 ‘할 만큼 열심히 배려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다행히 서로간의 마음이 통해서인지 처음 갈등과는 달리 큰 민원발생 없이 이주건이 해결된 것. 물론 주민들 섭섭함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시 행정이 필요한 것은 행정의 당위성에 앞서 시민앞에 겸손함일 것이 이번 해결의 한가지 열쇠가 됐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