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코트 알드로치(Wiskott-Aldrich) 증후군을 앓고 있는 종호(박종호?3)군이 또다른 희망과 시련을 맞이했다.
태어나면서 의사들도 낯설어 하는 희귀?난치병과 씨름하며 1년을 보낸 종호.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의 관심과 걱정을 받으며 여느 가정의 아이처럼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가장 축복받는 첫돌 때 불행의 그늘이 찾아왔다.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는 부모의 포기에 종호는 관내 사회복지시설인 익선원(원장 민태오?성거읍)에 찾아들게 된 것.<본지 2001년 5월17일자>
아이의 상태를 잘 몰랐던 익선원은 곧 후회했다. 종호가 들어오자마자 선생 한 명이 종호에게 매달려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단국대병원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에 요구해 아이 부모를 찾기로 했다.
몇 달 후 익선원은 겨우 부모를 찾아 종호를 돌려보냈다.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종호의 치료비 1천만원도 안겨줬다.
그러나 부모의 종호에 대한 사랑은 또다시 얼마간을 못 버텼다. 결국 성정사회복지관을 통해 지금의 김수보(성정동 등대침례교회) 목사부부에게 연결된 건 지난 2002년 2월, 종호가 만 2세가 되는 즈음이었다.
“종호랑 한 식구가 된 지 1년이 다 돼가요. 그러나 정들수록 마음은 더욱 아프답니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종호(3)는 한 달에 대여섯 번 병원을 찾는다. 혈소판을 수혈받아야 생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
병원에서만 시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종호는 심각한 아토피 피부염으로 살점을 파낼 정도로 긁는 습성을 보이고 있다. “아이랑 같이 자는데 어느 땐 침대가 피범벅이 돼 있기도 하죠. 치료하고는 있지만 안타까워요.”
IMF 때인 97년경 어려운 가정을 돕자는 취지로 창립된 ‘한국수양부모협회’ 창립멤버로 시작, 그동안 네 아이를 맡아 길렀던 김수보(44) 목사가 아이랑 인연이 된 것은 성정사회복지관을 통해서였다.
종호 부모는 갚아야 할 빚도 많아 맞벌이해야 할 형편이라며 1년만 아이를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1년이야 뭐 어렵나’ 하는 생각으로 받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속았다는 기분이 엄습했다. 아이 부모는가끔씩 찾더니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며 행방불명 3개월째로 주민등록조차 말소된 상태에 있음을 전해듣게 됐다.
심수보?유종희 부부는 지난 12월 종호를 맡길 만한 시설과 위탁모를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맡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자칫 세 살박이 아이가 버려져야 할 형편에 처했다.
고민 끝에 심 목사 부부는 종호를 선택했다. 대신 종호가 오기 전부터 키워오던 대진이를 떠나 보냈다. “대진이가 사정상 부모 곁으로 가진 못했지만 위탁모가 나타나 다행이에요.”
종호를 1년 계약이 아닌, 영구 위탁모로서 역할을 맡았지만 한편으로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종호가 안고 있는 희귀병은 보통 성인 이후까지 생존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골수은행을 통해 알아보니 동양에서는 종호에게 맞는 골수가 없다고 해요. 종호에게 근본적인 치료법이란 ‘골수이식’ 뿐인데….” 심 목사는 조만간 자신의 골수검사와 골수기증도 할 생각이다.
책임있는 위탁모가 되자 아무래도 경제적인 어려움도 찾아오고 있다. 현재 개척교회의 어려운 살림살이에 신자들의 도움도 받지만 혈소판 1회 투여에만 15만원 정도. 1년만에 사랑의 리퀘스트 후원잔금 8백만원과 독지가 도움을 받아 1천만원을 넘게 병원비로 소모했다. 다행인 것은 앞으로 병원비가 의료보험 혜택에 따라 치료비의 20% 미만에서 부담하면 될 거라는 기대다. 그래도 점점 치료주기가 짧아지고 종호 상태가 어떨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 경제적으로 벅찬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종희씨는 요즘 병원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종호와 붙어 있다. 한시도 눈을 떼면 아이와 엄마 둘 다 불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