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가명·53·원성2동)
원성2동의 어느 주택가. 김기석씨의 반지하방을 찾은 것은 햇살이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한 늦은 오후였다.
냉기가 가득한 바닥을 피해 김씨가 권해준 작은 전기장판 위에 앉았는데도 웃풍 때문인지, 난방을 안 해서인지 발가락이 계속 시렸다. 김씨는 요즘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사고로 왼쪽다리를 잃어 의족을 쓰고 있는 그는 오랜 기간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왔다.
그러던 지난 12월말 다리가 아파 병원으로 주사를 맞으러 다녀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그의 전동휠체어를 어떤 차량이 추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면서 이가 6개나 빠져버렸고 나머지도 흔들거리는 상황.
가뜩이나 안 좋은 몸에 치아까지 상하다보니 처해있는 열악한 형편이 더욱 힘겹게 느껴진다.
12년째 살아온 지금 사는 집도 얼마 전 경매로 넘어간 상황. 좋지 않은 기억으로 벗어나고 싶었던 동네지만, 떠나야 할 시기는 이제 본인의 의지가 아닌 집주인의 결정에 달려있다.
모든 걸 바꿔놓은 그날의 교통사고
고향이 목포인 그는 2남5녀의 여섯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류회사의 배달 일을 하던 김씨는 군대를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의 아버지는 6·25 전쟁 통에 7발의 총을 맞아 왼쪽다리를 잃었던 상이용사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남은 가족들은 더욱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김씨는 고향을 떠나 두 누나가 시집간 천안으로 이사를 와서 가정을 이루고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17년 전인 1999년 12월26일.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날, 기석씨는 인천의 처갓집을 가던 도중 커다란 사고를 당했다.
18톤 카고트럭과의 대형 교통사고로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본인은 다리를 절단해 2년여 세월을 입원해야 했다. 36세의 나이에 당했던 커다란 사고는 이후 그의 삶을 완전히 돌려놓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완전히 근로능력을 잃고 기초생활수급과 장애인연금으로 보조를 받아 생활해야 하는 형편에 처한 것이다.
장래와 노후가 걱정이 됐던 김씨는 사고로 받은 보상금에 20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지금 살고 있는 반지하의 빌라 한 채를 샀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계속 안 좋아지면서 그집마저 최근 경매로 내놓아야 했고, 구매 당시 5000만원이 넘었던 집은 4200만원에 넘어가 주인이 바뀌었다. 이제 주인이 비워달라면 언제든지 나가야 하는 상황.
엄동설한의 한 가운데서 아프고 불편한 작은 몸 하나 편히 쉬일 곳이 없어진 것이다.
“살 방이라도 하나 구해놓아야 하는데…”
“평택에 딸 하나가 살고 있는데 거기도 사글세 사는 형편이라 어렵지 뭐. 혼자 산지는 꽤 오래됐어요. 아침은 성모의 집에서 도시락을 보내줘서 먹고 저녁은 혼자 먹고 싶으면 먹고 아니면 말고죠. 삼시세끼 챙겨먹는 것이 어디 쉬운가(웃음). 재작년까지는 5㎏짜리 의족을 차고서도 한 시간 이상을 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 10분 정도의 거리도 여러 번을 쉬어야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아졌어요. 한 달 전에 받은 내시경 검사에서는 위암이 또 의심이 된다대요. 몸도 마음도 춥고 막 심란스럽고 그래요.”
방안 작은 책상 위 성모마리아상 옆에는 수많은 약 봉투들이 쌓여있다. 얼마 전까지 당뇨약 7가지를 먹다가 최근에는 인슐린을 복용중인데도 그렇다. 당뇨 외에도 고혈압과 허리 및 다리 통증이 떠나질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가 지원받는 것은 기초생활수급비 50여 만원과 장애수당 3만원 정도다.
하지만 집살 때 대출받았던 2000만원의 이자 9만원과, 수술 등으로 이래저래 필요해서 불가피해서 썼던 사채의 이자 35만원 정도가 매월 빠져나간다.
여기에 기본적인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정말 짜장면 한 그릇 사먹기가 부담스러운 극한 생활의 연속.
“집이 넘어갔으니 빚은 대충 정리할 수 있는데, 앞으로 살아야 할 방 구하는 게 걱정이에요. 보증금조차 막막하니까. 그 걱정만이라도 어떻게 좀 덜 수 없을까요.”
춥지 않은 올해 겨울이라지만 김씨의 이번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혹독하고 매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