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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삼거리엔 무엇이 있지?

획기적 변화를 앞둔 삼거리공원, 다양한 설치물 재배치도 필요해

등록일 2017년07월0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혹자는 ‘천안삼거리’가 흥타령춤축제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일리있는 말 같지만 한마디로 억지다. 사람이 유명해지면 그가 입은 옷 또는 신발이 눈에 띌 수는 있다.

천안삼거리가 유명해진 것은 예전 삼남대로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하나는 서울로, 또하나는 병천·청주·문경새재를 거쳐 경상도로, 또하나는 공주·논산을 거쳐 전주로 향하는 전라도 길이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좋은 길목이 인기가 있듯 ‘지리적인 위치’가 가져다준 이점이다.

한가지 더. 예전에는 음악책(교과서)을 통해 ‘천안삼거리’ 민요를 배웠다.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흥, 축늘어 졌구나, 흥~>으로 시작되는 민요였다. 노랫가락으로부터 전해오는 정서감은 애틋하고도 운치가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요즘은 K팝스타 같은 대중가요로 인해 민요나 가곡이 설 자리를 잃었다.
 

천안삼거리가 유명해진 것은 맞지만, 이렇듯 과거의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을 뿐 ‘천안삼거리’ 자체의 매력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져있는 것은 아니다.

천안시는 최근 공간브랜딩용역을 통해 천안삼거리의 상징성이 어떻고 정체성이 어떠하며, 오늘날의 위상이 어떤지를 분석해 ‘무언가’를 꺼내놓으려 애쓰지만 모두 어림없는 일들이다. 한때 삼남의 교류지점이었다 해서 만남이라든가, 풍요라든가, 열린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것들이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천안시민에게 직접적인 정서감을 새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전략가들의 헛된 기대로밖에 볼 수 없다.

천안삼거리를 전국적인 관광지로 만들려는 천안시의 시도는 계속돼 왔고, 최근에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벌판에 새로운 도시를 형성하듯’ 하루에 수천·수만이 다녀가는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사업이 추진중에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제2의 남원 광한루’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천안삼거리에 대한 천안시민들의 애정이 깊다.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는데, 그건 ‘시민의 삶의 질’에 도움되는 공원이길 바라는 것이었다. 남(외지인)이 우선이 아닌, 지역사회 위한 공원을 말이다. 천안시의 시선이 전국을 향하고 있다면, 지역민은 바로 ‘우리들의 공원’을 원하고 있었다.

과거가 중심이 되는 공원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매력적인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디자인된 공원이면서, 한편 과거의 이미지가 연관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다. 새겨들을 만하다.

한가지를 추가한다면, 시설적인 즐거움이나 오락적인 것 보다는 정신적인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개발되길 기대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되 어떤 즐거움을 향유할 것인지는 ‘마인드’의 문제다. 도시가 날로 성장하고 발전해가고 있는 가운데, 가장 절실한 것은 마음의 휴식처임을 시민들이 알려주고 있다.
 

지난 6월27일 천안삼거리공원을 둘러봤다. 잘 조성된 가운데 주차장 시설과 광장이 비약적으로 눈에 띄었다.

오로지 1년에 한번 열리는 흥타령춤축제를 위한 시설로, 그로 인해 숲 이미지는 많이 사라져 있었다. 또한 수많은 설치물이 혼재하고 있었다. 천안의 대표적인 장소다 보니 욕심껏 시설들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넘쳐난다는 느낌은 없지만 체계적인 모양새는 아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대부분 ‘이런 설치물도 있었나’ 하는 것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천안삼거리가 개발되면 이들을 각각 어디다 두는 것이 좋은지를 미리 연구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나둘 것과 옮길 것을 구분하고, 옮기더라도 제 위치에 두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참전기념비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 했던 상이용사들. 전쟁시 초개와 같이 몸을 던져 이 민족과 국토를 지켰다. 이미 가신 분과 생존해 계신 천안시 거주 상이용사 3811명의 주소를 일일이 조사해 기념비 건립 4년만에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전쟁을 잊지 않기로 함. 2004년 9월.
 

2·9의거 기념탑
여기 세워진 탑은 1946년 2워9일 천안의용소방대원과 광복 청년회원이 봉기하여 천안점거를 기도한 좌익세력을 사전분쇄해 우리고장을 지켜주신 의로운 님들의 업적을 기념하는 탑이다. -천안2·9의거 기념탑 건립위원회/ 천안시의용소방대
 

천안삼거리 비
천안삼거리 흥타령민요의 고장. 천안지안인자안이라 일컬어 하늘아래 가장 평안한 곳. 그 순후한 인정이 넘치던 삼남의 길목. 한그루의 능수버들 박현수 선비와 능소아가씨의 아련한 속삭임이 길손의 걸음을 즐겁게 한다. 천년. 그 묵은 향기 속에 희망찬 내일을 여는 천안이이 그 웅비의 나래를 편다.

 

삼룡동 3층석탑(문화재자료 제11호)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품을 모시거나 특별한 영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세운 건축물이다. 이 탑은 1961년 11월에 안서동에서 밭을 경작하던 중 발견하여 삼룡동 길가에 다시 세운 탑이다.

 

영남루(문화재자료 제12호)
영남루는 천안 화축관의 문으로 사용된 누각이다. 이 영남루를 1919년에 중앙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옮겼다가 1959년에 다시 현 삼거리공원 호수가로 옮긴 것이다. 화축관은 1601년(선조35년)에 군수 노대하가 세웠으나 그 후에 여러차례 고쳐지었다. 천안이 영·호남의 관문이어서 화축관은 역대 왕의 온양온천 행차시 임시거처로 사용하던 곳이다. 화축관은 일제시대에 경찰서 숙소, 헌병대 사무실로 사용됐고, 해방 후에는 학교 관사로 활용되다 헐리었다. 현재는 문루인 영남루만이 남아있다.

 

독립투쟁의사 광복회원기념비
우리고장 출신 독립투쟁의사 대한광복회원 장두환·유창순·성달영·유중협·강석주·조종철·김정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9년 10월에 건립한 비이다. 대한광복회는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이 1915년 통합해 결성된 혁명단체로서 1910년대 헌병경찰제에 의한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정치가 자행되는 암울했던 시기에 폭력혁명적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우리민족에게 독립에의 희망을 잃지 않게 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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