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립운동가 이한응 선생.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과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 이한응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11월 한 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여기서는 선생의 사진 및 유묵 등 9점의 사료가 공개될 예정이다.
이한응 선생은 1874년 9월21일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했다. 1889년 서울로 올라와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근대적 학문을 수학했으며, 1899년 관립 영어학교 교관으로 임명됐다. 영어를 수학했던 경력은 1901년 3월 런던주재 대한제국공사관 참서관으로 임명되는 밑바탕이 됐다.
1901년 8월 주영공사 민영돈(閔泳敦) 등과 함께 런던 얼스코트 트레버로드 4번지에 공사관을 개설했다. 1903년 11월 대한제국은 민영돈을 해임하고, 김승규(金承圭)를 주영대한제국공사로 임명했다. 하지만 신임 공사가 부임하지 않아 1904년 초부터 이한응이 대리공사로서 업무를 수행했다.
대리공사의 직임을 맡게 된 이한응은 1904년 초부터 러일전쟁을 예견하고 ‘한반도의 평화가 유럽의 세력균형과 연관된다’는 창의적인 견해를 영국 외무부에 전달했다. 이후 영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의 영토보존과 독립을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구국외교활동을 전개했다.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기 위한 끈질긴 외교활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일본의 정치적 특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조약 체결이 진행됐다. 이한응은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서 국권이 상실돼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고 1905년 5월12일 자신의 침실에서 목을 매어 자결 순국했다.
영국 외무성은 이한응 대리공사의 자결 소식을 주한영국공사에게 통보했다. 이 사실은 주한영국공사와 주한일본공사를 통해 대한제국 정부에 알려졌다. 대한제국은 주영대한제국공사관의 폐쇄를 지시하고, 주불대한제국공사관 참서관 1명을 장의(葬儀)를 위해 런던에 파견했다.
이한응의 유해는 고종황제의 특별지시와 런던주재 한국명예총영사 모건의 노력으로 그해 7월 고국에 반장돼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덕성리 금현(金峴)에 모셔졌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활동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리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