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하는 국민정서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활동을 불온시하고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충남 공주에 사는 한 모 씨는 지난 8일 오전, 공주시 옥룡동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10일 저녁 개최 예정인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2차 촛불시위’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는 촛불시위를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수 십 미터에 이르는 왕복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같은 내용의 손팻말을 들었다.
잠시 후 사복을 입은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한씨 등을 다짜고짜 촬영했다. 한씨가 다가가 이유를 묻자 이들은 공주경찰서 소속 경찰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촬영이유에 대해 “2명 이상이 같은 내용으로 피켓을 들고 있으면 집회신고 대상이며 신고를 하지 않아 불법집회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이어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한 채증(증거 수집)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한씨는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홍보를 벌인 1인 행사로 집회신고 대상이 아닌 데다 단순한 행사 안내로 불법집회가 아니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경찰은 “2명 이상이면 불법”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한씨는 또 “사전 고지나 설명 없이 몰래 촬영을 하는 게 말이 되냐”며 “초상권 침해에 해당하는 만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삭제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의 채증(증거 수집)은 ‘각종 시위 및 치안 현장에서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촬영, 녹화 또는 녹음하는 행위’다. 대법원은 ‘채증은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인정되는 때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경철청장에게 ‘채증활동을 엄격히 제한할 것’을 권고했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단순히 행사를 안내하는 홍보행위까지 집시법을 적용해 채증한 것은 자의적 판단으로 헌법상 보장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채증을 한 공주경찰서 관계자는 9일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어 미신고집회로 인한 불법시위로 판단해 채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날 ‘불법집회’에서 ‘불법집회 혐의’로 한 발 물러섰다. 이 관계자는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각각 마주 보고 활동을 해 같은 장소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어 법리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씨는 “경찰이 정당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를 불온시하고 있는 속내와 집회를 훼방 놓으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