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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나아서 고물 주워야 하는데…”

고물 주우며 찜질방에서 산지 3년째, 퇴원 후가 더 걱정/희망2016-이성구(가명·69·주거불명)

등록일 2016년10월1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이성구(가명·69·주거불명)씨.
환자들과 문병객들로 늘 북적이는 천안의 한 대학병원.

엘리베이터의 육중한 문이 열리자 혼자 힘겹게 링거거치대를 끌고 있는 이성구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회복지사와 기자가 온 것을 발견하고 인사를 하려던 것 같은데 ‘쉭쉭’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목구멍에서 커다란 종양을 제거하고 관을 심어놓은 상태인데 또 깜빡 잊었던 모양이다.

손으로 목 일부를 막고 나서야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가 어렵게 전해진다.

방사선 검사를 막 받고 왔다는 그는 요즘 걱정이 한가득이다.

앞으로 한 달을 매일같이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움직이고 검사하고 치료받는 과정 모두가 곤욕이라는 이씨.

“얼른 나가서 고물이라도 주워야 하는데…” 푸념하는 그의 좁은 어깨는 무척이나 가냘프게 느껴졌다.
 

찜질방에서 숙식해온지 어느덧 3년째

이성구씨가 천안에 온지는 벌써 7, 8년 전이다.

오래 전부터 고물과 폐지를 주워왔는데 3년 전부터는 정해진 주거지도 없이 두정동의 한 찜찔방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하루에 1~2만원이 보통, 정말 운수좋은 날은 10만원까지 해 본적도 있지. 오전9시쯤에 찜질방 근처부터 시작해서 오후 대여섯시 정도까지 두정동 일대를 다 돌곤 했어요. 요즘은 그것도 경쟁이 장난이 아니랍니다. 어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렇게 아파서 입원해 있다보니 답답하죠 뭐.”

예전에 수원에서 살 때는 개농장을 해서 돈을 좀 만졌다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의 얘기를 잘 듣는 편이다보니 큰 손해를 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빚을 지기도 했지만 남을 도와주려고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 곤경에 처한 적도 있었다.

결국 총 600만원 정도의 빚이 쌓였는데 그 독촉때문에 살고 있던 월셋방을 나와 도망다니다가 주민등록 일제정리기간에 비거주자로 파악돼 주민등록까지 말소되고 말았다. 

10여 년 동안 주민등록 없이 살다보니 노령연금이나 생활지원 등 제도적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옷은 재활용 통에서 골라 입고, 식사는 불규칙하게 대충 떼우는 식으로 살다보니 시나브로 건강은 악화되고 말았다.

최근 들어서는 목 부근이 자주 붓고 커다란 멍울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지난 7월에는 그 증상이 심해져 음식을 넘기기는커녕 숨쉬기조차 곤란한 상황이 됐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시 이씨의 상황을 알게 된 한 찜질방 고객은 한 달 찜질방 이용료를 선납해 주었지만 거의 소진이 돼가자 이씨는 다시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으러 나갔고, 결국 쓰러져 인근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 병원은 행색이 남루한 이씨의 상태를 보고 지불능력을 의심해 경찰을 불렀고, 결국 이씨는 천안의료원으로 이송됐다가 치료가 시급하다는 판단에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평소 성격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보니 어디가서 아쉬운 소리 한 번 하지 않는다는 그였지만 상황은 이미 그가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불행중 다행, 주민등록 복원

대학병원에서 급한 수술을 받던 과정에서 이씨는 10년 가까이 말소됐던 주민등록을 되살릴 계기를 맞게 됐다.

부성1동 행복키움지원단은 지난 9월28일 주민등록을 다시 할 수 있게 했고 10월7일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되면 추가적인 제도적 후원에 나설 예정이다.

불행 중 다행인 상황.

금융기록 조회, 주거조사, 자체심사 등의 시간이 소요되는 40여 일 후면 이성구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도 선정될 수 있고 20만원 남짓의 기초노령연금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사회복지사는 일단 지금의 병원비는 행려자로 구분돼 있어 해결이 가능하다며 퇴원 후에는 요양병원으로 옮긴 뒤 추가 의료비 및 주거문제 해결을 고민해 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두 달 정도나 일을 못하니까 너무 답답해요. 그저 놀고 있는 것은 싫어. 좀 나아지면 몸을 놀려야지. 뜻하지 않게 신세지게 되서 너무나 송구하고 고마워요.”

아픈 목을 붙잡고 어렵게 사연을 전하던 이성구 씨는 연신 고마움을 표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는 계절, 이씨는 조금이나마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까?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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