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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독립애국지사의 안타까운 죽음

충남 최고령 애국지사 조동빈옹 별세, 건강비관 투신 추정

등록일 2016년09월2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2003년 본보와의 인터뷰 당시의 조동빈 옹. 충남지역 최고령 애국지사였던 조동빈(92) 옹이 지난 20일 오후3시55분경 세상을 떠났다.

천안동남경찰서에 따르면 조동빈 옹은 이날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소재 아파트 10층 복도에서 몸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조 옹은 투신하기 전 아파트 난간에 한동안 걸터앉아 있었다고. 주민들이 이를 발견하고 내려오라고 만류하며 119 구조대에 신고했지만 조 옹은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동빈 옹은 119 구급대에 의해 인근에 위치한 천안의료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투신의 정황과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목격자와 가족 등을 상대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투신 당일인 20일, 조 옹의 행적은 여느 때와 약간은 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평소에는 늘 오전 9~10시 사이 천안시 동남구 소재 보훈회관을 찾아 회원들과 바둑과 장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 뒤 점심식사 후 오후 2-3시에 귀가했지만 이날은 1시간 반 정도만 회관에 머문 뒤 집으로 간다며 회관을 떠났다. 이후 조 옹은 자택을 들리지 않고 곧장 살던 아파트 10층으로 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회관 관계자는 “조 옹이 평소와 다른 점을 이상히 여겨 집으로 전화를 걸어 가족들에게 조 옹의 건강상태 등을 물었다”고 밝혔다.

경찰관계자는 “최근 시력이 나빠져 신경을 많이 쓰긴 했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고 가족간 다툼이나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며 “정확한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낙준 천안동남경찰서 형사2팀장은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푸념조로 ‘힘들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 그런 말씀을 요 근래 하셨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1924년 1월22일 평양에서 태어난 애국지사 조동빈 옹은 1945년 도쿄중학교 재학 당시 강제징병을 거부하고 중국 안휘성으로 건너가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이후 임시정부 선전 및 재정자금 조달은 물론 한반도에 잠입해 일제의 주요 시설을 폭파하는 비밀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조동빈 애국지사는 갑자기 찾아온 광복으로 인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귀국했지만, 당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상한 바 있다. 조 옹은 지난해 3월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제작된 목천고등학교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하는 등 최근까지 애국지사로서의 활동을 펼쳐왔다. 

조동빈 애국지사의 유족은 부인과 자녀 2명이다. 조 옹의 유해는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친일파 청산, 애국 강조하던 조동빈 지사

조동빈 옹은 생전 충남의 최고령 애국지사였다.
충남도와 천안시는 명절 및 광복절 등 국경일은 물론 시의 주요 행사마다 조동빈 옹을 챙겼고 문안도 자주 했었다. 생존 애국지사로 지역의 자랑이었던 조 옹은 앞서 2004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바 있다. 아래는 당시 인터뷰 내용 중 일부.

“고향은 원래 평양인데, 상해에도 있다가 동경무전에서 공부했었지. 스무살 때 북경에 있었는데 지나사변(중일전쟁)이후에 젊은 사람들은 다 학병이나 징용에 끌려가고 있었어. 그러느니 차라리 광복군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처음에 안휘성 부양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훈련을 받았어. 옛날에는 자그마한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인구가 400만이라더군(2011년에 1000만 돌파). 거기서 훈련을 받는데 그때 뭐 장비가 있나 돈이 있나 맨발에 구식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훈련을 했었어. 지금 말하면 테러부대지. 전면전은 엄두도 못 내니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구출작전 등이 주요 임무였고 지하공작 훈련이 대부분이었지. 그러다 광복을 맞았어.”

“옛날에 우리 동지 중에 김중근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지하공작 나갔다가 북경에서 일본놈에게 잡혀갔지. 너무나 당당한 자세에 일본놈들은 살살 꼬드기는 방법으로 정보를 빼내려 했지만 형무소에 들어간지 3일만에 목을 매 자살했어. 그 어려웠던 환경에서도 그만큼 광복군의 훈련이 잘 돼 있고 정신상태가 투철했다는 증거야. 김중근 같은 경우는 가족도 없는 총각이라 우리 빼고는 알 수가 없어. 그런 사람이야말로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라고 할 수 있지.”

“이승만 시절에는 광복군이라고 내세우지도 못하고 다녔어. 그러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63년부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고, 90년에 노태우 대통령때 훈장을 받았지. 독립유공자들과 그 자녀들 중 유복하게 잘 살고 있는 집은 사실 흔치 않아. 친일파들이 아직도 활개치고 있으니까. 친일파규명은 어쨌든 분명히 해야된다고 봐. 죄를 묻든 묻지 않든 역사는 역사니까.”

“평양에 남동생하고 여동생이 하나씩 있어. 하지만 북한에선 내가 광복군이었는지, 남한에 있는지 알지도 못해. 혹시나 동생들이 해코지 당할까봐 만나고 싶지 않아.”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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