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별책’은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진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빌려온 장계별책은 10월7일~12월4일까지 현충사에서 특별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장계별책(표지명 충민공계초)’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부산시 영도구에 위치한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계별책’을 충남 아산시 현충사로 반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아산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장계별책’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2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때부터 1594년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할 때까지 국왕인 선조와 세자인 광해군에게 올렸던 전시상황 보고서로 68편을 모아 1662년에 베껴 적은 필사본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 출전경과, 왜군의 정황, 진의 경비 등을 조정에 보고한 공문서를 정리한 것이다. 표지에는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 진년병란사辰年兵亂事’라고 적혀있다.
현재까지 이순신 장군의 장계가 기록된 것은 임진장초 61편, 현충사 소장 장계초본 12편, 이충무공 전서 66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중복을 제외하면 모두 78편의 장계가 존재하며, ‘충민공계초’에는 장계 68편이 수록됐다.
‘장계별책’은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진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장계별책’은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유출되기 전까지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 15대 종가에서 보관돼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덕수이씨 충무공파 후손들은 장계별책의 현충사 반환 요구를 담은 청원서를 지난 8월29일 충남 아산시의회에 접수했다.
청원서에서 덕수이씨 종회는 “장계별책은 충무공 종가에 전해지던 국보급 문화재로, 2007년까지 종가에 있던 장계별책 등 고서적 100여권이 도난당해 국립해양박물관에 넘어갔다”며 “장계별책이 충무공 종가에 소장된 사실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충무공 종가에서 촬영한 유리원판필름으로도 확인되는 등 국가기관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장계별책을 원소유주에게 환부한 뒤 충무공 유물이 보존된 현충사에 전시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산시의회(의장 오안영)는 ‘장계별책을 현충사로 반환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제190회 임시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해 9월23일 아산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이기애 의원이 낭독했다.
아산시의회는 ‘장계별책을 현충사로 반환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제190회 임시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해 본회의장에서 이기애 의원이 낭독했다.
아산시의회, “현충사에 있어야 역사가치 더 높다”
아산시의회는 건의문을 통해 “장계별책은 국립해양박물관이 아닌 현충사에서 보관·전시할 때 그 역사적 가치가 더 높다”고 강조하며 반환을 주장했다.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위치한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현충사 인근에는 이순신 장군의 외가가 있는데 어린시절부터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이곳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현충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난중일기를 비롯해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관한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장군의 넋을 기리고 숭고한 뜻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린 대표적인 교육 현장이다.
유물관에는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가 있다. 또 보물 제326호로 지정된 이순신 장군의 친필 검명이 새겨진 장검 두 자루와 도배구대 한 쌍, 옥로, 요대, 무과급제 교지, 사부유서, 증시교지 등의 유품과 각종 무기, 거북선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야외에는 충무공이 혼인해 살았던 옛집과 임금이 있는 북쪽을 피해 늘 남쪽을 향해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활터 등도 복원돼 있다. 충무공의 묘소는 현충사에서 9㎞ 떨어진 어라산에 모셔져 있다. 아산시는 매년 충무공 탄신기념일인 4월28일을 전후해서 ‘아산성웅이순신축제’를 개최한다.
이기애 의원은 “장계별책은 현충사에서 보관, 전시하고 있는 이순신 관련 고문서와 함께 존재했던 문화유산”이라며 “단순히 ‘장계별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현충사’에 전시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장계별책, 현충사에서 볼 수 있다
아산시를 비롯한 충남에서 개최되는 ‘제97회 전국체전’ 개막일인 10월7일부터 12월4일까지는 현충사에서 ‘장계별책’을 만나볼 수 있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계별책을 현충사에서 빌려다 특별전을 열기로 한 것이다. 특별전은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라는 제목으로 2개월간 현충사에 전시될 예정이다. 부제는 ‘한눈에 보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보고서’로 특별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특별전시 기간에는 현충사가 소장한 임진장초와 장계별책이 나란히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빌려온 장계별책은 현재 현충사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현충사는 휴관일인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면 무료 개방된다. 충무문-정려-고택-활터로 이어지는 동선에서 현충사에 대한 해설 안내를 받을 수 있고, 중학생 이상은 직접 활쏘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장계별책 표지에는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 진년병란사辰年兵亂事’라고 적혀있다. 국립해양박물관.
덕수 이씨 종가 장계별책 도난사건 일지
덕수이씨 종가에서 장계별책 도난사건을 되짚어 보면 국가적 보물이나 문화재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김모씨(55)는 2007년 6월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의 덕수 이씨 종가에서 장계별책을 포함한 고서적들을 빼돌렸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1년 6월 김씨는 수중에 있던 고서적을 고물수집업자인 조모(67)씨에게 300만원을 받고 넘겼다. 이후 2013년까지 문화재매매업자인 김모씨(54) 등의 손을 거쳐 매매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2013년 4월 국립해양박물관이 3000만원에 해당 고서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장계별책의 존재가 드러나자 경찰은 2015년 4월 고서적 판매자에 대한 역추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고물수집업자와 문화재 매매업자의 손을 거친 장계별책이 국립해양박물관에 팔린 사실에 주목했다. 경찰은 장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장계별책을 구매했을 것으로 보고 장계별책을 압수한 후 국립해양박물관 학예사 백모씨(32)를 문화재보호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최초에 덕수이씨 종가에서 고서를 빼돌린 김모씨를 비롯해 4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이에 국립해양박물관은 2015년 8월17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당시 박물관이 사들인 충민공계초와 덕수 이씨 종가가 분실한 장계별책이 서로 다른 책이기 때문에, 박물관이 장물을 매입했다는 경찰수사 결과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국립해양박물관의 손을 들어줬다. 장물취득혐의에 대한 ‘무혐의’ 처분과 함께 경찰이 압수한 고서 장계별책을 국립해양박물관에 돌려주라고 결정한 것이다. 결국 장계별책은 국립해양박물관 소유로 일단락 됐다.
반면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우리문화지킴이 등은 국립해양박물관이 돈을 주고 문화재 매매업자에게 고서를 구입한 행위에 대해 ‘부당취득’으로 규정하고 지난 8월5일 감사원에 ‘국립해양박물관 이순신 장계별책 부당취득에 관한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감사청구서에서 “국립해양박물관이 국제박물관협의회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며 “선의취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덕수 이씨 종가에서 도난당한 장계별책이 국립해양박물관이 구입한 고서 충민공계초와 서로 다른 책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