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양 교수/순천향대병원 이비인후과
‘인간이 느끼는 맛은 다섯 가지지만 향은 수천 가지입니다. 커피는 향이다.’
어느 커피광고의 카피라이트다. 의학적으로 맛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 이렇게 다섯 가지만 존재한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음식을 통해 느끼는 맛은 수천 가지 그 이상이다.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맛은 기본적인 다섯 가지의 맛 이외에도 음식의 향이 더해져 수천 가지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풍미(風味)라고 부른다.
맛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며, 삶에 주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 ‘풍미’에는 후각이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무후각증을 비롯한 다양한 후각 장애를 앓는 환자들이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그만큼 후각 장애는 흔한 질환이다.
후각장애는 후각원을 포함하고 있는 기류가 코 안에 냄새를 맡는 후각신경까지 도달하지 못해서 생기는 전도성 후각장애와 후각신경계의 이상으로 생기는 감각성 후각 장애로 나뉜다. 후각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폐쇄성 비부비동질환, 상기도 감염, 두부손상, 화학적 손상, 노령, 내분비 대사이상, 신경퇴행성 질환, 종양, 정신질환 등 매우 다양하다. 이중에서도 뚜렷한 원인이 있는 무후각증은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으로 무후각증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기도 감염 후에 오는 무후각증’의 경우, 완치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비부비동 질환에 의한 무후각증의 경우, 약물치료로 호전이 없으면 수술적인 치료를 시행해 높은 수준의 후각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상기도 감염 등으로 비롯된 감각성 후각 장애의 경우, 발생 초기에 높은 용량의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경구제와 비강 내 스테로이드 스프레이 등을 통해 한두 달 간의 약물 치료를 시행한다. 그러나 발생한 뒤 늦은 시점에 내원하거나 증상이 재발한 경우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치료가 어려울 경우 후각재활 훈련을 시도해볼 수 있다. 최근 유럽의 몇몇 의사를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본원을 비롯한 소수 병원에서 시도하고 있다. 무후각증 환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정해진 향기를 맡게 하고, 또 단계에 맞추어 농도에 변화를 줌으로써 재활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치료 효과를 살펴본 결과, 몇몇 다기관 무작위 비교대조군 연구에 의하면 재활훈련을 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높은 단계의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높은 농도로, 발병 후 12개월 이내에 시작했을 때에 효과가 있었으며, 효과에 있어서는 남녀 간 큰 차이가 없었다.
본원에서는 약 한달 간 스테로이드, 비강 내 스프레이, 은행잎 추출물 등의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3가지의 향기를 나눠주고, 단계에 따라 농도를 달리하면서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엄지손톱만큼의 탈지면 솜에 한두 방울의 향기를 떨어뜨린 후, 본원 프로토콜에 따라 후각재활을 시행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또한 후각검사가 후각 역치, 식별, 인지 항목으로 나누어 있는 것에 착안해 이에 맞는 프로토콜을 개발했으며, 개별 환자의 후각 장애 정도와 종류에 맞추어 치료를 시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으면 가스감지기, 연기 경보기, 상한음식에 대한 경각심 및 영양에 대한 영양사와의 상담 등을 고려해야만 한다.
무후각증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과 빠른 치료다. 만약 후각에 이상이 느껴진다면 서둘러 치료를 시작하자. 미루면, 후각은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