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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의 굴레,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요

희망2016-오숙희(54·천안 성환읍)

등록일 2016년04월1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오숙희(54·천안 성환읍) “지난 6개월 동안 정말 토요일, 일요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어요. 그런데도 어찌된 건지 매달이 적자에요. 작년인가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데도 저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해서 안했어요. 사지육신 멀쩡하니까 남한테 도움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제는 어떡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힘든 상황이에요. 이 악순환의 굴레를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을 뿐이에요.”


길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지난 주의 어느 날 정오 무렵. 성환에 사는 오씨의 집을 찾았다.
대문 옆에는 커다란 사철나무가 멋들어지게 자라 있다. 그녀가 사는 집은 비슷한 형편의 대여섯 세대가 모여 사는 다세대주택이다.

손님을 맞을 채비를 한 듯 말끔하게 치워져 있는 방안에서 그녀의 사연을 들었다. 누구보다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가 강했던 오숙희씨. 하지만 그런 그녀도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일들은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전한다.
 

남편의 사고 이후 잇따른 악재들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은 13년 전.

그는 조경과 상하수도 공사, 둑에 쌓는 트라이포드를 작업하는 기술자였다. 하지만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태풍 매미가 오면서 사업은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복구 예산이 도로, 철도에 집중되면서 남편의 일은 뒷전이 되버렸고 작은 일들이나 간간히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다 2007년, 다행히 남편은 충북 제천에 있는 정규 직장을 잡게 됐다. 지하수를 개발해 물을 파내는 일이었다. 이제야 한 숨 돌리겠구나 싶었던 남편의 취업은 안타깝게도 커다란 한숨으로 돌아오게 됐다.

작업 도중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손을 크게 다친 것이다. 엄지, 검지의 신경이 절단돼 오른손을 거의 못 쓰게 됐고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일시금으로 2000여 만원을 받게 됐다.

이 시기에 남편은 이 귀한 돈을 일단 묶어둔다며 싸게 나온 집을 사두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서 사기를 당해 계약금을 날리고 거기에 더해 보이스피싱으로 170여 만원을 더 날리고 말았다. 

오씨는 상심한 남편을 다시 데려와 성환에 방 하나를 얻었다. 하지만 이사온 지 한 달도 안 돼 옆집에 큰 불이 났다. 자고 있다가 맨발로 뛰어나와야 했을 정도로 급박한 불이었다. 세 집이 살았는데 한 사람이 사망했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갖은 살림살이와 세간을 모두 눈앞에서 불태워야 했지만 월세 사는 입장이어서 보상은 10원 하나 받지 못했고 간신히 보증금만 돌려받을 수 있었다. 잇따른 악재는 이들 부부를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때 이후로 외부외출을 거의 끊었다. 오씨 말로는 4년여 부터는 문밖외출을 안하면서 매일 술에 기대 살았다고 한다.

가장이 된 오씨는 봄이면 배꽃화접, 여름이면 배 봉지싸기, 식당 일용직, 휴게소 아르바이트 등 삶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신랑이 아파서 일만 하는 일중독 아줌마”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일하고도 이렇게 힘들어야 한다면…

지난 겨울에는 한 식당에 취업했었다.

신랑이 아파 밤12시까지만 한다는 조건으로 얻은 일자리였지만 새벽 한두시를 넘기는 건 예사였다. 외부 일거리가 없는 겨울철이라 그래도 꾹 참고 일했는데 한참 바쁜 시기를 지나고 나서 설날 직전인 2월6일날 해고됐다. 눈물겨운 사정을 토로해도 소용없는 차가운 해고였다.

남편은 3월부터 알콜성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 오씨의 전화번호를 잃어버리고 집에서 30분 거리인 옆 마을에서 맨발로 돌아다디던 남편을 데리고 와야 했던 일도 있었다. 새벽에 집을 나가 택시를 타고 중고차매매상사를 찾아가 차를 계약하려 한 적도 있다. 급기야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그냥 갖고 나오다 절도범으로 신고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해고 이후 수입이 끊겨, 배 화접일이 시작되기 전 무슨 일이라도 찾던 오씨는 남편을 두고 밖에 나갈 수가 없게 됐다. 그러던 상황에서 주변을 통해 긴급복지에 대해 알게 되고 ☎129 통화를 하면서 사례관리전문요원과 연결이 된 것이다.

남편은 복지사의 도움으로 시내의 한 알콜전문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다. 복지사는 일단 의료수급이라도 받을 수 있게 행정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게 도와 줄 예정이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여의치가 않다.

“가난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죠. 그래요, 제가 나태하고 열심히 살지 않았다면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일하고도 애쓰고도 이 정도로 힘들어야 한다면 대체 어떡해야 할까요. 이 시기만 넘기면, 조금의 여유만 생긴다면 저는 얼마든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사지육신 멀쩡한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요.”

오씨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만다.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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