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출 할머니가 아산 소녀의 상을 어루만지며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경북 상주가 고향이오. 일본 놈들에게 끌려가기 전에 오빠 셋, 언니 셋이 있었고 나는 막내였어. 그런데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오빠도 언니도 아무도 없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본 놈들한테 중국 길림성 어디로 개처럼 끌려 다니며 수모를 당했어. 일본 놈들이 화장실도 못가게 하면서 몽둥이로 때리고 못살게 굴었어.”
“너무 많이 맞아 이러다 죽겠다 싶었어. 그때 머리에 난 상처가 지금까지도 있어. 일본 강도 같은 놈들에게 다시는 나라를 뺏기지 말아야 해. 나는 이 말을 내가 죽을 때까지 하고 다닐 거야”
지난 3월8일 ‘세계여성의 날’ 아산 신정호 공원에서 열린 ‘아산 평화의 상 제막식’에서 강일출(88) 할머니가 한 말이다. 강일출 할머니는 최근 전 국민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귀향(鬼鄕)의 실제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강일출 할머니는 아산시 신정호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뺨을 어루만지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일본군 만행 ‘태워지는 처녀들’ 그림으로 증언
강일출 할머니는 열여섯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일본군은 위안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위안부에 대한 ‘총살과 소각 명령’을 내렸다. 이때 강일출 할머니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서 힘겹게 탈출했다.
영화 ‘귀향’은 강일출 할머니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1943년 한 농촌가정의 행복한 일상이 어떻게 파괴되고, 전쟁터에 끌려온 소녀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잘 묘사하고 있다.
강일출 할머니는 지난 2001년 일본군 위안부 쉼터인 ‘나눔의 집’ 미술심리치료에서 ‘태워지는 처녀들’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 그림에서는 당시 열여섯 소녀가 피부로 느낀 두려움과 일본군의 잔혹한 만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을 본 조정래 감독은 할머니들이 겪었던 참혹했던 순간들을 영화로 제작해 역사와 문화의 증거물로 남긴다. 영화 속에서는 어린 소녀들에게 가해지는 일본군의 강간과 폭력 장면들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들은 병들거나 임신해서 거동이 불편한 소녀들을 치료하기 위해 후송한다. 그러나 소녀들이 끌려간 곳은 병원이 아닌 커다란 웅덩이 앞이다. 웅덩이에는 이미 죽은 소녀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이 광경을 본 소녀들이 저항할 새도 없이 뒤에서 총을 쏜다. 이어 죽은 소녀들 몸 위에 기름을 끼얹고 그 위에 불을 지핀다. 이렇게 죄 없이 끌려간 소녀들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강일출 할머니는 일본군들이 철수하기 전 ‘총살과 소각’ 명령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죽을고비를 넘기며 탈출한다. 이 장면이 강일출 할머니가 목격해 증언하고 그림으로 남긴 ‘태워지는 처녀들’이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 할머니 44명 뿐
영화 ‘귀향’에서는 위안부 피해신고 접수창구의 남성 공무원을 향해 ‘내가 그 미친년이다. 우짤래?’라고 고함치며 노여워하는 위안부 할머니의 장면 나온다.
이에 앞서 남성 공무원의 대사는 “(아마 우리지역에 정신대(위안부) 피해자 신고는 없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과거를 밝히겠어?”였다. 이 장면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 사회가 위안부 할머니를 바라보는 굴절된 시각이 아닐까.
위안부 피해자가 몇 명 이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정부가 조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숫자는 대략 8만명~20만명 정도로 추산할 뿐이다. 그 중 정부에 공식적으로 접수한 피해할머니 숫자는 238명이다. 그 할머니 숫자는 한 달 전 46명, 지금은 44명으로 줄었다.
이에 강일출 할머니는 “내 기억과 의식이 살아 있는 한 내가 일본 놈들한테 당한 일을 두고두고 이야기 할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신차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