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일하는 삶을 보호하고, 미래의 행복할 권리를 지켜주는 희망버팀목’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러나 최근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난소암에 걸려 사망한 고 이은주씨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태도를 보면 그들의 존재이유를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고 이은주씨는 1993년 4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만17세에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 입사해 1999년 6월까지 근무했다. 이은주씨는 6년2개월간 1급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에 장기간 노출됐다.
결국 건강 이상으로 퇴직했고, 이후 난소 낭종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에 난소암이 진단됐고, 뼈를 비롯한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되는 등 증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그녀는 재발과 수술을 반복하는 12년간 긴 투병생활 끝에 2013년 1월4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사망한 뒤 같은 작업공정에서 근무하다 난소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는 제보자가 잇달아 나타났다.
그로부터 3년 후 사망한 이은주씨는 산재를 인정받았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월28일, 고 이은주씨의 유족이 지난 2013년 5월14일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난소암이 발병한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근무하면서 유해 화학물질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상당기간 주야간 교대근무를 했으며, 그 기간 동안 피로, 스트레스가 누적된 것으로 보이는 바, 이러한 유해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종양이 발병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8일, 근로복지공단은 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유족들을 또 다시 기약 없는 법정 투쟁으로 내몬 것이다. 올해 79세인 고인의 아버지는 고인의 사망 직후 4년간 산속에 칩거해 왔다. 딸을 잃은 충격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한 것이다. 그러다 법원판결 후 처음으로 근로복지공단을 직접 찾아 항소는 말아달라고 호소하려 했지만 공단은 끝내 아버지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제 근로복지공단에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의 존재 이유를 그들만 모르는 것은 아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