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연구원이 '충남재발견' 시리즈 1호로 기획 출판한 <심훈을 찾아서>
농촌 소설 <상록수>는 충남 당진 필경사에서 태어났다. 독립을 꿈꾸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요절한 심훈(1901~1936)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필경사(筆耕舍)는 '원고지에 농사를 짓는 집'이다. 필경사가 <상록수>의 산실이 된 것은 필연이었던 셈이다.
심훈이 사망하던 그해, 3남인 심재호(81)씨가 태어났다. 출생지 또한 필경사다. 그가 아버지 심훈의 흔적을 찾아 다닌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충남연구원(원장 강현수)이 '충남재발견' 시리즈 1호로 기획 출판한 <심훈을 찾아서>(도서출판 문화의 힘, 265쪽, 1만 4000원)이다.
이 책의 '사진으로 보는 심훈'(제1부)에는 심훈과 관련된 수십 점의 귀한 사진 자료가 실려 있다. 일제총독부의 검열 도장이 찍혀 있는 '심훈시가집' 표지사진, 빨간 '출판불허' 도장이 선명한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검열판), 3.1만세 운동으로 인한 서대문감옥 수감 기록, 심훈이 제작 감독한 영화 '먼동이 뜰 때' 시나리오 원본, 북한에서 한글 글씨의 대가로 꼽히는 이각경, 이철경 서예가가 쓴 심훈의 시 '그날의 오면' 등이 그것이다.
필경사와 심훈 그리고 소설 <상록수> 실제 주인공 '공동경작회' 이중 눈길을 끄는 것은 소설 <상록수>에 등장하는 '농우회' 회원들(16명)의 얼굴이다. 당시 당진 부곡리에서 농촌운동 모임으로 조직된 '공동경작회'를 운영했던 실제 주인공들이다.
'공동경작회'는 지금의 영농협동조합의 시조라 할만하다. 소설 <상록수>에서도 채영신(실존인물 여대생 최영신)을 통해 당시 협동조합의 천국인 덴마크의 농촌혁신 사례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심재호씨는 이 책에서 '상록수' 남주인공(박동혁)의 실존 인물이자 '공동경작회' 회원었던 심재영의 회고 글을 통해 공동경작회 활동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공동경작회는 마을 내 야학 사업을 위한 사업기금을 논농사를 통해 마련하기 위해 결성됐다. 처음엔 12명으로 출발해 20명으로 늘어났다. 매주 한 번씩 모여 국내 정세보고, 작업일정 결정, 농사개량법, 교양강좌 등을 논의했다. 공동경작한 논도 처음 7마지기에서 23마지기로 늘어났다.
이들은 못자리 개량, 줄 모심기, 비배관리(거름을 잘 주어 땅을 기름지게 하여 작물을 가꾸는 일), 보리 외골 파종법 보급, 우수 종자 공급 등으로 수확량을 갑절로 늘렸다. 술과 담배를 끊자는 금주 단연 운동도 벌였다. 이발 기구를 구매, 회원들이 이발사가 돼 전 동민의 머리를 깎아줬다. 인력 탈곡기도 사들여 타작할 때 쓰게 했다.
강현수 충남연구원장 "86년 전 공동경작회는 '3농 혁신' 사업의 실 모델"
고리채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곗돈을 싼 이자로 빌려줬다. 마을 안길을 넓히는 일에도 나섰다.
일제강점기 말, 일본의 강제 식량 공출로 공동경작회가 존속할 수 없게 됐다. 경작회는 소유 전답을 모두 매각해 회원들에게 분배하고 부득이 해산했다.
하지만 농한기마다 집안 형편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친 야학(초등반, 청장년반, 부녀반)만은 계속됐다. 야학은 해방 이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일본어를 빼고 국어, 산수를 가르쳤는데 국어교과서는 '농민독본'이었다.
당시 심훈은 소설 <상록수>로 받은 상금 일부(500원 중 100원)를 야학기금으로 찬조했다. 부곡리 야학당 건물은 이후 송학국민학교 상록분교장으로 변모했다.
심훈은 또 공동경작회원들의 요구에 따라 애국가 곡조를 붙인 '부곡리 애향가'(농민 애국가)를 만들어 보급했다. 이 노래는 부곡리 주민들에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진시는 현재 서울시친환경급식센터를 통해 '상록수 쌀'을 공급하고 있다. 심씨는 "아버지 추모제를 맞을 때마다 고향과 필경사를 지킨 공동경작회 회원들의 추모제도 합동으로 지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현수 충남연구원장은 "당시 경작회원들의 결의와 기개, 자부심이 드높았다고 한다"며 "충남도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벌이는 '3농 혁신'은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인 86년 전 부곡리 '공동경작회'의 모범을 이어받자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권영민 교수 "현대 문학 최대 보물, 잘 지켜온 심재호 선생께 머리 숙여 감사"
<심훈을 찾아서> 2부에 실린 김태현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 교수(문학평론가)가 12쪽으로 정리한 '심훈 선생 일대기'는 짧은 '심훈 평전'이다. 3.1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옥고를 치른 사연, 만주로 건너가 신채호, 이회영 선생과 만나 독립을 다짐한 과정,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쫓겨난 사연, 뒤늦게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과정, 신문에 연재하던 글이 일제의 정지처분으로 중단된 일, 필경사를 직접 설계하고 당진으로 귀향한 과정 등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이 책의 핵심은 3남 심씨가 50여 년 동안 4천 여장의 아버지 육필원고와 유품을 찾아 헤맨 여정이다. 당진시는 지난 2004년 9월, 필경사 옆에 심씨가 기증한 육필원고 사본 등을 활용한 '심훈 기념관'을 개관했다.
권영민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는 <심훈 시집 '그날의 오면'의 친필 원고들> 제목의 수록 글에서 "이 자료들이야말로 한국 현대 문학 최대의 보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어떤 작가나 시인의 경우에도 이렇게 많은 친필 원고를 고스란히 보존해 온 경우가 없다. 이 자료들을 잘 지켜오신 심재호 선생께 머리를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고 썼다.
심훈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
이 책에는 이외에도 심훈의 수필 8편, 심씨가 아버지 흔적과 남북 해외 이산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나섰던 북한 방문기, 재미교포의 눈으로 본 한국 여행기도 실려 있다.충남연구원이 "한 권으로 읽는 심훈 평전이자 심훈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라고 말하는 이유다.
저자인 심씨는 당진 필경사에서 출생(1936년)해 서울고,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1974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주 동포신문 <일간 뉴욕> 편집국장 겸 발행인, 카터재단의 국제분쟁조정기구(INN) 창립회원, 조국평화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뉴욕 이산가족 찾기 후원회를 조직해 1987년부터 1995년까지 북한을 20여 차례 방문, 1천여 명의 남북 해외 이산가족을 찾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