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130여 이웃에, 누적 2억2000여 만원의 성금 전달

교차로·충남시사 ‘희망 1004운동’ 올해로 11주년

등록일 2015년12월2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함께해서 행복했던 희망 2015년

어느덧 2015 을미년이 저물고 2016년 병신년 원숭이띠해가 다가오고 있다.
천안교차로·충남시사신문이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이웃사랑 캠페인을 추진해 온 것도 벌써 11년째다.

그동안 본보는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천안아산시민들과 함께 천안․아산지역의 희귀․난치병 환자, 한부모가정, 극빈가정 등 소외된 이웃들을 발굴하고 모금을 통해 이들의 희망을 후원하는 일을 해왔다.
올 한해도 본보를 통해 2000여 만원이 넘는 성금이 우리 천안·아산의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누계로 지금껏 130여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된 성금은 2억2000여 만원을 넘는다.
본보는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이들의 근황을 전하고 그동안 성금모금에 참여해준 후원자들과 본 지면을 아껴준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천안교차로·충남시사신문은 다가오는 병신년 2016년에도 지역사회 기부나눔 문화의 모범이 된다는 각오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고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데 주저하지 않을 예정이다. 아래는 2015년 연계 지원을 받은 대상자들의 사연과 뒷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이진희 기자>

김숙자(가명·53·쌍용2동)
파킨슨 병과 크론병 앓던 김숙자 씨

2003년부터 이상증세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김씨는 2007년 서울아산병원에서 파킨슨병 확진을 받았다. 그전에는 중풍인줄 알고 한의원에 다녔다는데 병세가 점차 나빠졌고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은 물론, 집안에서도 넘어지기 일쑤인 상태까지 돼 버렸다.

한때는 남편과 별도로 식당도 운영하며 의욕적인 삶을 살았었지만, 경제적인 위기와 병 때문에 이제는 제 한 몸 스스로 추스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36살 때 남편과 늦은 결혼을 하고 15년을 살았지만 병이 생기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면서 3년 전 이혼한 상태. 그녀를 돌봐 줄 가족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행히 129복지콜을 통해 복지서비스와 연계되면서 지난 12월말 열흘정도 입원 후, 전체적인 정밀검사를 받았다. 병원 측은 3월초 파킨슨 병과 이에 관련한 뇌수술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40여 만원의 빠듯한 수급비로 생활하던 김씨에게 300~400만원의 예상 진료비용은 커다란 부담이었다.

하지만 본보를 통한 후원과 의료원측의 도움으로 잘 정밀검사와 수술을 마친 그녀의 상황은 한결 나이진 상태. 심했던 몸의 떨림도 거의 없어져 교회도 다닐만해졌고 LH전세임대주택 대상자로도 선정돼 두정동으로 이사도 했다. 김씨는 복지사를 통해 본보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배영대(가명·51·성정2동)
투병중인 아내, 중3·고3아들의 버팀목 이대영씨

손톱깎기 공장의 노동자였던 이씨는 보통의 가정처럼 소박한 행복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다른 공장에 취업해야했고 이 공장마저 위기에 처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6개월치나 월급을 받지 못했다. 공장을 인수한 새 대표는 남은 직원들에게 대부계약서를 쓰게 하고 기본적인 생활비를 빌려주었다. 하지만 그도 불과 인수 8개월 만에 폐업신고를 해 버렸고 대부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빌려준 도로 내놓으라는 소송을 걸었다. 졸지에 380만원 정도를 폐업한 사업주에게 갚아야 하는 위기에 내몰리게 된 배씨.

어렵게 새 직장을 찾아 일을 하고 있지만 18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아내의 간병에다 중3·고3 아들의 뒷바라지까지 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다.
큰 아이가 10살, 둘째가 5살 때 쓰러진 아내는 지금도 정신과 약물을 복용중이지만 주기적인 경기를 일으킨다. 현재까지 아내의 치료에 들어간 비용은 1억원이 넘는다.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가 된 이씨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중재로 매달 20만원씩 8년간을 갚아야 한다.

본보를 통한 후원금은 당시 발작으로 화상을 입었던 아내의 치료비와 생활비로 요긴히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경계선에 있기에, 위기의 가정을 온전히 떠받쳐야 하는 부담은 여전히 아버지의 몫이다.

오영숙(가명·61·신부동)
엄마를 대신한 누나, 시련의 끝은 언제쯤…

아버지는 삼남매의 장녀였던 오영실씨가 7살, 큰 동생이 4살, 막냇동생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삼남매를 데리고 친정인 논산으로 돌아왔다. 이후 인근 강경포구에서 생선들을 사다가 광주리에 이고 다니면서 팔아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다.
장녀였던 오씨는 어머니를 도와 살림을 도맡으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하지만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는 약 한 번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오씨가 18살때 안타깝게 돌아가시고 만다. 그녀는 남동생 둘을 뒷바라지 하고 제대로 키우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누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등에 업고 결혼 후 공기업에 자리까지 잡은 30대 초반의 큰 동생은 허무하게도 덤프트럭에 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은 사업을 벌였던 동생도 사업실패로 현재 영어의 몸이 된 상태.
젊어서 고생한 탓인지 몸이 일찍 안 좋아진 그녀는 현재 척추관협착증에다 고혈압, 다리·무릎통증 등으로 제 한 몸 추스르기도 쉽지 않게 됐다.

본보를 통한 후원금으로 밀린 월세를 갚고 생활비에 보탰다는 오씨는 얼마 후, 의료원에 입원해 무릎수술을 받았다. 현재는 운동도 열심히 해 걸어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다는 그녀.
“몸만 조금 괜찮아지면 내 한 몸 건사할 자신은 있다”는 그녀는 재활의 의지를 다잡고 있다.

이순례(가명·56·천안 두정동)
가정폭력 피해 숨어사는 순례씨 모녀

이순례씨는 아기였을 때 삼남매를 키우던 한 가정집에 버려졌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이 가정에서 순례씨는 처음부터 미운오리새끼였다. 순례씨만 빼고 그녀가 ‘업동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세상에 나온 그녀는 갖은 세파에 시달려야 했다. 보호가 절실했던 그녀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의지할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만나는 남자들마다 대부분 음주와 폭력, 도박을 하며 험하게 사는 이들 뿐이었다.

합의이혼한 전 남편이 언제 들이닥쳐 해코지할까 두려워 짐을 그대로 두고 야반도주를 하기도  여러차례. 이런저런 이유로 딸아이는 초등학교만 20번 가까이 전학을 했다.
순례씨 모녀는 예전에 일했던 식당 주인의 도움으로 한 집에 2년 가까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전기세, 수도세, 먹는 것까지 대부분을 포함해 보증금 없이 월 40만원을 내는 조건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지원을 받고는 있지만 방세를 제하면 약값 및 기본적인 생활비를 쓰기도 빡빡한 상황.  본보를 통한 후원으로 밀린 방세를 치르고 생활비를 충당하긴 했지만 모녀의 불안함은 여전하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딸의 꿈을 지켜주고 싶지만 현실은 엄마의 바람을 쉽게 허락하려 들지 않는다.

이태원(58·입장면)
4차례에 걸친 허리수술, 퇴원을 걱정하던 이태원씨

첫눈에 본 그는 180㎝가 넘는 키에 덩치도 있어서 힘깨나 쓰는 장사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걸음을 걷기 시작하자 이내 허리가 구부러지고 벽을 짚어야 할 정도로 힘든 모습이었다.

이태원씨는 2014년 일용직으로 하수도 청소차를 운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열리지 않는 맨홀뚜껑을 열려다가 잘못 넘어져 꼬리뼈를 심하게 다쳤다. 어떻게든 참고 일하려 했지만 하반신 마비 현상까지 오자 병원에 입원을 결심하고 경기도 부평에서 척추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하반신 마비통증으로 올해 천안의 한 병원에서 3월에 1차 수술, 4월에 2차 수술을 받았다.

네 번째 수술을 받고나서야 겨우 거동할만 해졌다는 그는 밀려있는 병원비를 고민하고 있었다. 3월에 받은 수술비 300만원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원받았으나 2차 병원비 480만원은 지원이 안 되는 상황. 이미 2014년 10월 파산신청을 한 그에게는 도와줄 부모도, 형제도 마땅치 않았다. 병원비를 정산하지 못해 입원일이 길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 그는 다행히 본보의 후원 등을 통해 병원비를 정산하고 퇴원했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일하고 싶어하는 그의 의지만은 확고하다.

김준호(가명·73·삼룡동)
가정의 달 5월, 혼자라서 더 쓸쓸했던 김준호씨

집도 없이 차안에서 생활을 하던 김준호씨는 올해 5월이 되어서야 보증금 10만원에 월세 15만원인 방을 겨우 얻었다.
전쟁고아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혼자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다 보니 각종 심부름꾼부터 뱀 잡는 땅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유랑하듯 살던 그가 주민등록증을 만든 것은 31살이나 되어서다. 1979년 운전면허를 딴 그는 한 화물회사에 취업해 4.5톤 트럭 기사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몇 년 일한 다음에는 2.5톤 트럭을 사서 개별화물 등록을 하고 개인사업을 할 정도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런 ‘좋았던 시절’은 지인의 소개로‘다단계’에 손을 대면서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결국 노년에 중국 보따리장사의 심부름꾼이 되고 만 김씨. 그나마 2013년 등산 중 추락사고를 겪으면서 이 일마저 못하게 됐다. 당시 사고로 3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은 김씨는 척추에 6개, 다리에 9개의 철심을 박은 상황이다.

후회스럽지만 되돌릴 수 없는 세월 앞에서 무기력해 하던 그는 본보의 후원으로 다세대 공동주택에서 개인 화장실이 달린 보다 깨끗한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김미란(가명·53·성정1동)
장애자녀 돌보다, 장애 얻을 형편의 김미란 씨

김씨의 25살 둘째아들은 지적장애1급, 22살 막내딸은 지적장애1급에 시각장애 1급의 복합장애를 갖고 있다.
25살 둘째아들은 엄마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소변을 완전히 가리지 못한다. 30롤짜리 휴지 한 봉이 1주일을 가지 못하는 집. 두 자녀가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 상황. 지난 20여 년간의 삶이 어땠을까 가늠하기도 힘들지만, 어머니 김미란씨는 힘든 내색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김씨는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달랑 하나 있던 집을 처분해야 했고 1999년부터 지금의 집에서 월세를 살게 됐다. 아이들이 공립특수학교를 다닐 때는 그나마 엄마가 숨 쉴 틈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남매가 학교를 졸업한 최근 몇 년은 그야말로 24시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남편의 수입이 있고 본인도 50대다보니 수급자도 차상위계층도 아닌 상황. 자녀들을 돌보면서 지친 엄마의 몸은 마음마저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본보의 후원금은 이달초 시집간 첫째 딸의 혼례준비에 요긴하게 썼다고 한다. 복지사각지대에서 전쟁같은 일상을 보내야 하는 그녀는 언제쯤 잠시나마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

이순자(38·성정1동)
가혹한 가정폭력에 불안해 하던 이순자씨

이씨는 작은 마당이 있는 낡은 다세대주택에서 고1 아들, 중3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가족들은 연락을 끊고 소재를 숨기려고 하지만 불안감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둘째는 아빠가 학교로 찾아올까 두려워 얼마 전 비밀전학까지 했다. 문밖 골목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면 가족들은 놀란 눈이 되어 공포에 떨어야 한다.

남편에 의한 가정폭력의 잔혹성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다.
생후 8일된 딸에 대한 학대는 ‘살인미수’ 혐의가 인정돼 1년6개월 형을 받았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도 가족에 대한 크고 잦은 가혹행위는 끊인 적이 없다. 남편의 출현이 이들에게는 공포자체다.

딸과 이씨는 최근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나서고 경찰서에서도 순찰을 강화해주고 있지만 가족들의 불안감은 잦아들지 않는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심각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지만 서류상으로 이씨는 기본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돼 있어 정부로 지원받는 돈은 모든 수당을 합쳐 60여 만원에 불과하다.

생활비 때문에 만들어 쓴 카드값이 170여 만원 밀려있고 전기세도 30만원 가까이 내지 못한 데다 무보증금에 월 15만원인 집세도 4개월이나 밀려 당장 쫓겨날 형편이었던 이씨.
다행히 LH전세임대주택 사업의 대상자로 선정돼 본보의 후원금으로 보증금을 내고 새 거처를 구한 상황. 주거비가 줄어든 만큼 생활의 숨통도 트일 수 있을까.
<이진희 기자>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