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의 혼용무도(混庸無道)가 2015년의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혼용무도’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이르는 ‘혼용’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 속 ‘무도’를 합친 표현이다. 각종 현안에서 집권자의 의지와 능력이 제대로 의심받은 모양새다.
이 ‘혼용무도’를 올해 천안에 대입해 보니, 안타깝지만 무척이나 적절하다.
전직 시장 말기에 추진된 천안야구장은 수많은 의혹에 휩싸이며 전 국민의 지탄을 받았고, 절대 다수의 천안시민이 지지한 고교평준화를 놓고 도의원들은 소모적인 정쟁에 몰두했다. 수년째 계속되는 AI·구제역으로 농가의 시름은 올해도 계속됐고, 메르스를 겪으며 불안했던 시민과 학생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다. 몇몇 시의원들은 비리로 낙마하거나 재판을 받고 있으며 시청브리핑실은 정작 주인인 시민들을 도외시한 갈등이 현재 진행형이다.
본보는 ‘혼용무도’했던 2015 을미년 천안시의 주요 뉴스들을 정리하며 2016 병신년에는 보다 희망찬 뉴스들을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780억들인 ‘허허벌판’, 천안야구장 논란
2013년 11월26일, 천안시 동남구 삼용동 천안삼거리 공원 남쪽 일원 13만5432㎡부지에 78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성인야구장 4면과 리틀야구장 1면 규모의 천안야구장이 준공됐다.
지역 야구동호인들의 숙원이었던 이 야구장은 불행하게도 올해 천안의 가장 불명예스런 키워드가 됐다.
천안야구장은 총사업비 가운데 토지보상비로 지불된 545억원(미보상액 69억원) 대비, 야구장 건설사업비는 고작 37억원에 불과해 운동시설은 물론 배수시설이나 야간조명 등 이용객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토지보상비 대비 시설비 비율이 93% 대 7%로 누가 보더라도 땅을 산 것이지 야구장을 만든 게 아니라는 지적.
천안야구장 부지는 최초 감정평가가 이뤄진 2009년 9월7일, ㎡당 17만원에 불과했던 것이 단 9개월 만에 44만4000원으로 급등했다. 이런 지가인상에는 보상에 앞서 주변 지역이 자연녹지에서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이외에도 공시지가 상승에 목적성은 없었는지, 특정 소유주에게 몰아준 보상액이 타당한지 여부는 어느 하나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천안시의회는 천안야구장 의혹에 대해 질의하기 위해 행정사무감사 기간중 성 전 시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키려 했지만, 출석요구서가 ‘폐문부재’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수차레 반송되면서 끝내 불발되고 말았다.
난산 끝에 도입된 천안고교평준화, 연착륙 전망
충남교육청과 충남도의회는 천안지역 고교평준화를 두고 지난해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4만여 명에 가까운 천안시민이 참여한 여론조사 결과, 73.8%가 찬성해 당연하게 추진될 것이라 믿어졌던 고교평준화는 ‘준비부족, 시기상조’라는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한 도의원들의 주장과 부딪히며 예상치 못한 장기간의 표류사태를 빚었다.
결국 충남도의회는 3월18일 천안지역 고교평준화 조례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3월26일에는 2016년부터 평준화를 시행하고 단일학군으로 학생들을 배정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지난 9일 마감된 후기고 원서접수결과, 천안지역 평준화 도입 고등학교에는 5346명 모집에 정원외 56명을 포함해 5172명이 지원했다. 아산지역은 2922명모집에 2846명이 지원해 76명이 총 정원에서 모자랐다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외부지역 유출·입이 상당히 줄어들면서 지역교육 정상화, 내 지역 학교다니기라는 평준화의 장점은 상당히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공포, 각종 행사취소·휴교령 잇따라
중동의 풍토병으로만 알려졌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우리 지역에도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파장을 몰고 왔다.
시민들은 인근 평택과 아산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환자들에 예의주시하며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병원, 대형마트를 비롯해 다중밀집장소는 대부분 한산해지기까지 했다.
천안시는 감염예방을 위해 지역에서 개최예정인 대규모 행사들을 대폭 축소하거나 취소했다. 메르스는 특히 교육현장에 커다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첫 감염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평택과 인접한 천안·아산의 유치원과 초중학교를 시작으로 임시 휴업이 잇따랐다.
6월3일 천안 성환에서 첫 휴교가 시작되면서 시내권도 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임시휴업을 결정한 학교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가장 많은 학교가 휴교한 것은 지난 6월8일로 초 51개교, 중 4, 고 1개교가 휴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12월23일(수) 자정을 기해 메르스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지난 5월20일 국내에서 첫번째 메르스 환자가 확진된 뒤 그간 총 186명이 감염됐으며 이중 38명이 숨졌다. 치사율은 20.4%를 기록했다.
시내버스노선 개편, 공영제 필요성 제기
지난 8월26일 천안시청에서는 ‘천안시 시내버스노선 전면개편 용역 착수보고회’가 열렸다. 천안시는 2016년 상반기까지 용역을 완료하고 최적의 최종 노선을 확정해 시행할 계획이다.
시는 지난 2007년 시내버스 노선을 전면 개편한 이후, 매년 부분적으로 노선을 조정해 왔으나, 지구단위 택지개발, 산업단지 조성 등 도시 및 교통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전 노선에 대한 계획을 재수립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한편, 매년 많게는 150억여 원의 혈세가 지원됐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버스비는 가장 비싸고 학생을 비롯한 교통약자들의 할인 폭은 가장 적으며, 이용자 대부분이 사용하는 카드 할인률은 가장 낮은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지난 10월8일 출범한 ‘충남시내버스 공공성 실현을 위한 천안시민연대’는 천안시내버스의 6대 문제점으로 ▷전국 최고로 비싼 버스요금 ▷시내버스 보조금 운영의 불투명성 ▷시내버스회사 재정의 불투명성 ▷버스운행상의 문제점 ▷버스기사의 열악한 근로조건 ▷천안시의 관리감독 부실 등을 들며 공영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단체 말리는 천안복지재단 출범
지난 11월4일(수) 구본영 시장과 12명의 발기인이 참석한 가운데 재단법인 천안시복지재단 설립을 위한 창립총회가 열렸다. 재단을 이끌어 나갈 이사장에는 문은수 문치과 대표원장이 선출됐다.
천안시는 복지재단에 35억8000만원을 출연해 재단의 재정적 안정성을 도모하고 향후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 또 신방동에 재단 사무실을 마련하고 사무국에 직원 10명을 두어 행정지원과 재단의 사업을 수행하며 재단의 사업이 늘어나는 시점에 인력을 증원해 나갈 예정이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들은 복지재단의 출범초기부터 재검토를 주장해 왔다. 천안지역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복지재단의 설립 자체보다 그 복지재단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며 “이와 관련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고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하는데 방향성이 잘못돼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존 공공복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천안복지재단의 향후 행보가 관심을 끈다.
교육부 vs 도교육청 불협화음
정부당국과 충남교육청과의 갈등도 예년보다 두드러진 한 해였다.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 11월3일 확정고시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국가적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대전·세종·충북·충남 교육감들은 공동명의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국력의 낭비를 야기하는 국가적 비극으로 극심한 편가르기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누리예산(민간어린이집에 대한 보육료 지원)을 두고서도 정부와 교육청간의 갈등이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누리과정예산은 현재 민간어린이집에 대한 지도감독권한도 없는 지역교육청에 떠넘겨지고 있는 상황.
새누리당 중심의 충남도의회는 12월7일 2016년 충남교육청 교육비 특별회계 예산(안)중 349억원을 삭감해 누리과정 예산에 편성하기까지 했다. 보육대란은 물론 교육재정 파탄이 우려되는 위기상황이다.
천안판 ‘도가니’사건, 가해교사 징역15년 확정
천안판 ‘도가니’ 사건의 가해교사 이모(51)씨에게 징역 15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천안의 모 공립특수학교 목공교사였던 이모씨는 지적장애를 가진 10대 여학생 제자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것으로 전해져 지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바 있다.
지난 7월6일 대법원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 등)로 기소된 이모씨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신상정보 공개 및 위치추적 전자장치(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는 2010년 3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자신이 가르치던 10대 여학생 3명을 5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고 4명의 여학생들을 7차례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범행현장을 목격한 학생에게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며 흉기로 위협한 혐의도 받았다.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은 1인 시위, 서명운동 등을 펼치며 사건의 심각성과 진실알리기에 힘쓰는 한편, 수십차례의 재판을 쫓아다녔다. 결국 가해교사가 구속된지 3년 반이 지나서야 최종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구제역과 AI, 씻을 수 없는 축산농가의 아픔
천안에서는 지난해 12월16일 수신면의 한 돼지농장을 시작으로, 올해 3월3일 병천면의 농장까지 모두 16농가에서 구제역 신고가 접수됐다. 이에 예방 살처분을 포함해 모두 1만2828 마리의 돼지가 땅에 묻혔다.
구제역과 함께 발생한 AI 때문에 가금류 농가도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발생한 AI로 천안에서는 닭, 오리, 메추리 등 가금류 176만7000마리가 살처분됐다.
수년째 지역 축산농가의 아픔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천안시는 지난 10월11일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방지를 위한 방역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시는 내년 5월까지를 특별 방역대책 추진기간으로 정하고 8개반 17명으로 구성된 구제역·AI방역대책 상황실을 운영하는 등 본격적인 특별방역을 추진한다.
현재 천안에는 296 농가가 닭 440만7000마리, 41농가가 오리 34만9000마리, 12농가가 기타 51만2000마리를 키우는 등 총 349농가에서 526만800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브리핑실 속 언론환경 ‘폐단논란’
올해 천안브리핑실은 ‘뜨거운 감자’였다.
브리핑실에 12개 언론사 기자들이 자리를 차지, 소위 ‘천안시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정보와 광고의 독점적 형태를 띠면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천안시청을 이용하는 취재등록언론은 110여개. 기자들간 다툼이 일면서 시청은 ‘알아서 할 일’이라며 관망, 시의회는 ‘공평중재’에 나섰다. 지난 1월 브리핑실활성화법을 의원발의해 ‘상시점용’을 없앴고, 폐단이 이어지자 12월 정례회에 ‘브리핑할 때만 문을 여는’ 개정안을 의장발의로 상정하기도 했다. 거센 힘겨루기 끝에 시의회는 상정을 보류한 채 3500만원의 공보실 언론홍보비 거듭 삭감해 500만원만 남겼고, 천안시는 폐단방지책을 강구중에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기존 폐단은 ‘공정한 룰’로 해소시키는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으나, 자칫 기자실이 부활되는 또다른 문제로 번질 위험을 안고 있다.
의원들 비위 ‘어디까지… ’
천안시의회 7대의회 의원들의 비위문제가 심각하다. 선거과정에서부터 공천금 문제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모두 파문이 일었다.
급기야 정치자금법, 뇌물공여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이복자(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이 대법원에서 징역1년에 집행유예3년, 추징금 8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받아 의정활동 1년을 못채운채 의원직이 상실됐다.
박완주(새정치연합·천안을) 의원 보좌관을 지냈던 황기승 의원도 천안지역 식품업체로부터 금융권 대출편의 제공을 대가로 돈을 받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또다른 보좌관 A씨는 1심재판에서 징역2년6월에 추징금 1억원을 선고받았으나, 황 의원은 그의 단독범행임을 주장하고 있다. 식품업체 대표는 지난 9월 심리재판에서 “황 의원이 말하길, 박완주 국회의원이 선거로 3억원의 빚을 졌다. 불법대출이라도 알선해줄 수 있고, 친구(박의원)가 약속했다고 했다”고 발언해 관심을 모은다.
방범용 폐쇄회로 사업의 특정업체 밀어주기 의혹을 받고 있는 B 의원 또한 12월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미 전·현직 관계공무원 수십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벌여왔다. B 의원은 이것 말고도 천안시 시내버스 승강장의 태양광 조명설치 사업과정에도 관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학수·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