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2015-김선자(가명·46·천안)
*아랫글은 천안시의 한 복지사님 소개로 만난 김선자(가명)씨의 고백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네. 전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목수셨고 엄마는 공장에서 일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추락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치셔서 수술을 서너번이나 하시는 바람에 엄마가 실질적인 가장이셨죠. 저는 방직공장내에 있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가 2년 동안 미싱을 배운 뒤 천안에 다시 내려와 일을 했어요.
친구의 소개로 스물 다섯에 첫 결혼을 했지만 행복하진 못했어요. 남편은 택시기사였는데 남 밑에서 일을 못 할 성격이었죠. 술 때문에 삼진아웃으로 면허 취소를 당하고 벌금까지 크게 물어야 했어요.
저는 미싱일을 하면서 알게 된 인맥으로 관련 업체에서 미싱을 10대 정도 들여와서 동네 사람들과 하청작업을 해서 납품을 하곤 했어요.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조립 같은 부업은 물론이고 밤에는 식당일 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그렇게 갖은 악조건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려고 애썼고 10년간 시부모님도 모셨어요. 하지만 남편은 판정만 받지 않았을 뿐 알코올 중독이었죠. 환각, 환청을 호소했고 의처증세까지 있었어요. 언어폭력은 물론 아이들에 대한 손찌검 등 가정폭력도 다반사였고 경찰까지 여러 번 출동해야 했어요. 심지어 부모·형제에게도 폭력적인 행동을 할 만큼 위험한 사람이었죠.
결국 결혼 17년 만에 양육비 포기, 재산포기 조건으로 합의하에 이혼을 했어요. 그때 시어머니가 당신 명의로 빌라를 하나 얻어주셨죠. 하지만 뒤늦게 남편이 찾아와 도로 내놓으라고 해서 결국 아이 둘을 데리고 맨손으로 나와야 했답니다.
당시 한 겨울에 어느 원룸 지하 주차장 한 구석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일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짐 위에서 이불을 덮고 아이들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었죠. 미싱일을 주시던 한 사장님께 가불을 해서 어렵사리 보증금을 내고 원룸 하나를 얻어 들어갔어요.
당시 큰 딸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으로 한참 민감했던 시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요. 심한 아토피로 돌발성 난청까지 있었거든요. 나중에 두 딸은 모두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아이들과 대화와 소통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죠. 가까스로 상황을 추스르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생활을 이어갔어요.
‘두 번째 결혼, 두 번째 상처’
그 때 큰 애와 갈등이 무척이나 심했고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조그만 가게 하나를 운영하며 장사를 하던 아저씨의 도움을 받게 됐어요. 그 분 역시 이혼하고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혼자 애를 키우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동병상련이라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죠. 처음에는 생활력도 있어 보이고 아빠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역시 좋은 아빠가 돼주겠다고 약속했고요.
하지만 나중에 살림을 차리고 보니 2번의 이혼에 동거녀까지, 전혀 몰랐던 이력이 있더라고요. 더구나 두 번째 이혼녀는 언제부턴가 매일 집에 찾아와 집안살림을 뒤엎고 난리를 치기 일쑤였어요. 자기가 키우던 딸을 우리집에 보내고 데려가고 하면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게 만들었어요. 새 남편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하고 한 번 집을 나가면 함흥차사였어요. 결국 일이 잠잠해 지고 나서야 돌아오곤 했죠.
생활 역시 나아진 것이 없었어요.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한 달 내내 일을 해야 주던 생활비 겸 월급 100만원이 전부였죠. 애가 아파 데리고 병원에 갔다오면 결근처리하고 월급에서 공제하던 사람이에요. 시댁에 가도 며느리가 아닌 그저 ‘일하러 온 여자’ 대접을 받아야 했어요.
좋은 아빠가 되어주겠다던 말 역시 사실이 아니었어요. 큰애는 성인이 되면서 혼자 나가 살면서 거의 연락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새 남편은 큰애를 찾아 작은애를 맡기라며 자꾸 내보내려고 했어요. 그런 부부사이에도 사내아이 하나가 태어났어요. 올해 네 살이죠. 본인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백일잔치, 돌잔치 할 때가 되면 없어졌다가 한 두달 뒤에야 나타나곤 했어요. 결국 딸들 양육문제로 두 번째 남편하고도 이혼한지 3년 정도 됐어요.
‘제 삶과 아이들의 삶,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요’
막내가 갓난아기 때는 업고 다니면서 낮에는 전단지 붙이는 일, 밤에는 미싱일, 휴일에는 용역을 통해 설거지라도 했었는데 조금 크니 아이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기존에 아이를 맡겼던 어린이집은 아이를 더 이상 받기 힘든 상태라고 해서 새 어린이집을 찾아 대기 중이에요. 어린이집에 막내를 맡기게 되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죠.
다행히 올해 6월에 LH전세임대주택사업 대상자로 선정됐어요. 여기저기서 빚을 내 겨우 보증금은 납부해서 앞으로 주거비는 많이 줄어들 것 같아요. 어서 빚을 갚고 아이들도 더 챙겨야죠.
글쎄요, 어디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제 삶도, 아이들의 삶도.
오히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것 같은데,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크게 보이지 않아요. 복지사님하고 기자님이라도 이렇게 찾아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부디 조금씩이라도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