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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에서, 사각지대에서 이어가는 힘든 삶

장애자녀 돌보다, 장애 얻을 형편의 어머니-희망2015 김미란(가명·53·성정1동)

등록일 2015년10월2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김미란(가명·53·성정1동)씨 모녀.


김미란씨 집을 찾은 것은 미세먼지가 하루종일 내려앉아 있던 지난 주의 어느 오후였다.

어려운 형편의 다세대 가구들이 모여 사는 성정동의 한 오래된 골목길, 그 가운데 김미란씨 네 가족의 보금자리가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김씨의 둘째인 아들이 반가운 기색으로 기자를 살짝 밀친다. 갑자기 털썩 앉았다 벌떡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아들. 안에서 TV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막내딸이 벽을 더듬으며 다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엄마와 기자 사이에 앉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중얼 무언가를 되뇐다.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려하기도 잠시. 막내딸은 본인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세차게 때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딸을 자제시키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힘에 부치는 눈치. 결국 딸은 요구르트 하나가 손에 쥐어지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김씨의 25살 둘째아들은 지적장애1급, 22살 막내딸은 지적장애1급에 시각장애 1급의 복합장애를 갖고 있다.

두 자녀가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 상황. 지난 20여 년간의 삶이 어땠을까 가늠하기도 힘들지만, 어머니 김씨는 힘든 내색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하루하루 전쟁같은 일상

김미란씨의 고향은 대구고 남편 허씨는 천안이 고향이다.

부부는 허씨 숙모의 주선으로 선을 통해 인연을 맺고 1989년에 결혼해 천안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첫째딸 이후 장애를 가진 둘째아들과 셋째딸이 태어나며 삶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달랑 하나 있던 집을 처분해야 했고 1999년부터 지금의 집에서 월세를 살게 됐다.

아이들이 공립특수학교를 다닐 때는 그나마 엄마가 숨 쉴 틈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남매가 학교를 졸업한 최근 몇 년은 그야말로 24시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25살 둘째아들은 엄마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소변을 완전히 가리지 못한다.

새벽운동을 나온 어른들처럼 늘 벽에다 자기 몸을 부딪히고 있다. 항상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잠도 거의 없는 편이라 살이 찌지도 키도 많이 자라지 않았다고.

어떤 행동을 할지 잠시 앞을 가늠하기 힘든 막내딸은 요즘은 그나마 많이 얌전해진 편이다.

원래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시각장애를 갖게 된 것은 후천적인 결과다. 화가 나면 자신을 학대하던 막내는 본인의 눈을 때려 망막을 망가뜨렸고 결국 중학교 때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눈이 안보여서인지 늘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오빠와 자주 다퉈 엄마 속을 상하게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성인이 된 두 자녀와 엄마는 바깥 세상을 거의 나와 본 적이 없다. 자녀들은 먹을 것에 집착하는 나이든 아기에 불과하다. 집안은 그 누가와도 깔끔할 수가 없는 상황.

30롤짜리 휴지 한 봉이 1주일을 가지 못한다. 얼마 전 장애인부모회에서 20만원 상당의 물티슈와 기저귀를 지원해 줬지만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약해진 마음, 포기하는 게 빨라진 엄마

남편은 페인트를 칠하는 일용직 노동자다.

일이 많은 봄·여름은 그래도 좀 낫지만 겨울이 오면 방세가 밀릴 정도로 살림이 빡빡해진다. 여름에는 많게는 300만원 가까이 벌 때도 있지만 겨울에는 그 절반이 안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일 욕심에 열심히 한다지만 올해 63살인 남편은 이제 늘상 하던 일도 힘들어질 때에요. 인형 눈이라도 붙여 살림에 보태고 싶은데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니는 남매들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어요.” 김씨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남편의 수입이 있고 본인도 50대다보니 수급자도 차상위도 아닌 상황. 일상은 중노동 하듯 힘들고 살림은 빡빡하기 이를 데 없어도 어떤 외부의 지원이나 혜택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

말그대로 경계선에서, 사각지대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힘든 삶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저도 모르게 포기하는 게 무척이나 빨라졌어요. ‘다음에’,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거나 말을 듣게 되면 아예 빨리 잊고 포기하는게 속 편하니까요. 복지관이나 장애인 부모회 같은 기관에서 종종 도움을 주는 걸 알고는 있지만 늘 포기해요. 잠시라도 집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자녀들을 돌보면서 지친 엄마의 몸은 마음마저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정서·심리지원까지는 못하더라도 며칠동안 혼자만의 짧은 휴가라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김씨의 집을 떠나고서도 그녀에 대한 걱정은 한동안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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