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을 보면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 같아서…”
박옥연(48?염치읍 강청리)씨가 어르신들께 식사 대접하는 이유는 사무치도록 그리운 어머니 때문이다.
합천 이씨의 종가집 맏며느리로 들어와 땡전 한 푼 구경할 수 없는 시댁이었지만 시어머니의 가르침만은 가난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저렇게 예쁜 것이 어떻게 내 집에 들어 왔을꼬’하며 아침마다 며느리가 있는지 없는지 신발을 확인하셨던 시어머니.
사람의 됨됨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어머니를 잊을 수 없어 8년 전 식당을 개업하면서 남모르게 동네 어르신들을 돕기 시작했다.
“봉사랄 것도 없어요. 명절 때 동네어르신께 고기 한 점 갖다드리는 것으로 시작했지요”
빚더미 속에 시작된 식당이라 누구 돕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무뚝뚝한 남편 이우식(2000년 작고)씨도 그것 만큼은 반색하며 좋아했다.
몇 년 전부터는 동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경로위안잔치를 해 드렸다. 한 번 할 때마다 2백명이 넘는 어르신이 강청골 가든으로 몰려든다. “그때만큼 기쁠 때가 없어요. 내 어머님이 드시는 것 같고 시어머님 더 잘 모시지 못한 것이 속상하고”하며 눈언저리를 닦아내는 박옥연씨.
가난한 살림이 너무 힘들었지만 그보다 힘들었던 것은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다.
한동안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컸었다. 지금도 그때 충격으로 가던 길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좋아하던 일을 버릴 수가 없어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6일(수) 염치읍에 거주하는 노인 2백50여분을 모시고 위안잔치를 베풀어 드렸다.
“점심 한 끼 대접하는 것이 무슨 큰 봉사냐”며 손사래를 치며 신문에 나오는 것을 싫어하는 박옥연씨. 신문에 한 번 나와서 다른 사람들도 이처럼 남을 돕고 살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기자의 설득에 마지못해 카메라 앞에서 웃어 보였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한테 욕먹지 않고, 부모 공경하고, 자식들 잘 키우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그렇게 살려고 했고 그게 신문에 나올만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냥 근본을 잊지 않고 사람들이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며 박씨는 인생사를 말한다.
이번 경로위안잔치를 끝내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남편의 영정을 맞대하는 것이었다. ‘여보, 이 기쁨을 같이 누리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 알아요’하며 한없이 이우식씨의 사진을 바라다 보았다. 이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없지만 시부모님이 주신 애정과 남편의 사랑을 더해 더 많은 이웃에게 사랑을 줄 것이라고 박옥연씨는 다짐해 본다.
이제는 장애인, 양로원 노인들처럼 직접 손이 가야 하는 봉사가 필요한 곳에 나서고 싶다는 박옥연씨.
오늘도 그녀의 식당으로 많은 손님이 몰려든다. 그중 제일 반가운 것은 시부모님을 닮은 어르신네. 그런 어르신에게 따뜻한 미소를 던지며 시부모님이 주신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