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일제의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여성항일투사

5월의 독립운동가 안경신 선생(1888. 7. 22~ 미상)

등록일 2015년05월1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5월의 독립운동가 안경신 선생(1888. 7. 22~ 미상) “나는 일제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이다.”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과 국가보훈처는 2015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안경신 선생을 선정하고 5월 한달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갖는다.

안경신 선생은 평남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평양여자고등학교 2년을 수료한 후 귀향했다가 1919년 3월 1일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의 서소문동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평양지역 3·1 운동은 3월9일까지 지속되는데 이 기간 일본 경찰에 검거된 인원이 약 400명이었으며 선생도 이때 만세운동 가담으로 체포돼 29일간 구금됐다.

3·1운동 직후 국내 여러 항일여성운동단체들이 조직되는데 1919년 10월19일 서울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 1919년 11월 평양에 대한애국부인회 등 평안도를 중심으로 많은 여성단체들이 결성됐다. 안경신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결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는 교통부원으로 활동했다. 1921년 6월 대한애국부인회 강서지회가 일제에 발각되면서 전원 체포됐으나 선생은 체포되지 않았다. 대한애국부인회 회원들의 체포로 조직 활동이 불가능 해지자 선생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중국으로 망명했다.

안경신 선생은 1920년 중국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직할 군사 조직인 대한광복군 총영 활동에 참여했다. 대한광복군 총영은 1920년 7~8월 중 미국의원 시찰단 방문시 세계 여론에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고자 총 3개 대로 인원을 파견해 국내 폭탄 거사를 준비했다. 선생은 제 2대에 소속돼 중국에서 비밀리에 폭탄을 직접 소지하고 평양으로 잠입해 평양지역 의용단과 함께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 일부를 파괴했다.

의거 당시 임신한 상태임에도 선생은 거사를 진행했으며, 1921년 3월20일 경찰에 체포돼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임시정부의 구명 노력으로 2심에서 징역 10년형으로 감형을 받고 수감됐다. 1962년 정부는 안경신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리 이진희 기자>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