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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초조한 일상, “한 시라도 편하게 살고 싶어요”

가정폭력 피해 숨어사는 순례씨 모녀- 이순례(가명·천안 동남구)

등록일 2015년04월2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이순례(가명··천안 동남구) “중학생이 되어서야 제 가족이 친가족이 아닌 것을 알았어요. 세상이 말하는 ‘업동이’였죠. 그동안 받았던 학대와 모진 행동들의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폭력에 시달려 왔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어요. 이제 딸과 함께 잠시라도, 마음만이라도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어요.”

상담실에서 만난 이씨는 불안한 듯 맞은편의 기자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밝은 낮에 이렇게 외출을 하는 것도, 처음보는 타인을 만나 얘기해야 하는 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었나 보다.
복지사와 함께 잠시 안정을 찾은 그녀는 한 번도 남에게 털어놓은 적 없던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한 번도 사랑 받아보지 못한 사람

이순례씨는 아기였을 때 삼남매를 키우던 한 가정집에 버려졌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이 가정에서 순례씨는 처음부터 미운오리새끼였다. 순례씨만 빼고 그녀가 ‘업동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때부터 밥을 함께 먹는 것은 고사하고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길에서 잠을 잔 적도 있을 정도로 방임학대를 받았다. 걸핏하면 이유없이 가해지던 구타역시 예사였다.
그나마 어머니는 그녀를 불쌍해 하며 “맞고 있지만 말고 중학교만 졸업하면 빨리 도망가서 취직해라”고 타이르곤 했다.

불안불안하게 학업을 이어오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고 팔과 배에는 그때 상처입은 칼자국이 길게 흉져있다. 당시 순례씨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도 못하고 지옥같은 집과, 학교에서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 곳없는 홀홀단신 여고생이 어두운 긴 터널을 혼자 빠져나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 살 많은 오빠를 만나 같이 살게 되었지만 그에게서도 늘 맞는 것이 일상이었다. 갈 곳이 생길 때까지 버틴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결국 서울로 도망쳐 올라왔다. 보호가 절실했던 그녀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의지할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만나는 남자들마다 대부분 음주와 폭력, 도박을 하며 험하게 사는 이들 뿐이었다.

순례씨는 그렇게 어두운 10대와 20대를 보내고 30대 중반에 만났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이전 혼인기록을 알게 된 남자는 아내를 벌레보듯 멸시하고 상습적인 폭력은 물론 흉기까지 휘두르며 하루하루를 공포에 떨게 했다. 결국 다섯 살 된 딸을 데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도망을 간 이씨.

가혹한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어렵게 마련한 방 보증금 1000만원을 빼서 애아빠에게 주며 합의 이혼을 얻어내긴 했지만 그가 언제 들이닥쳐 해코지할까 두려워 짐을 그대로 두고 야반도주를 하기도 벌써 여러차례다. 이런저런 이유로 딸아이는 초등학교만 20번 가까이 전학을 했다고 한다.

“현재 딸애가 고3인데 늘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해 해요. 우울증도 심하고요. 먹는 것도 잘 체하고 병치레도 잦고 신경성 위염까지 있답니다. 박복한 엄마 때문에 딸아이까지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순례씨는 눈물을 글썽인다.

6개월째 밀린 방세, 불안감에 미안함까지

현재 순례씨 모녀는 예전에 일했던 식당 주인의 도움으로 한 집에 2년 가까이 세 들어 살고 있다.
전기세, 수도세, 먹는 것까지 대부분을 포함해 보증금 없이 월 40만원을 내는 조건이다. 간간이 아르바이트로 식당일이나 청소를 하긴 하지만 불안한 주거와 구타로 망가진 몸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순례씨 역시 무릎통증,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애아빠가 혹시 또 알고 찾아올까 두려워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낮에도 초인종이 울리면 나가보지도 않고, 전화도 아는 번호가 아니면 받지 않아요. 여러가지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방세가 6개월이나 밀려있어서 너무 미안해요. 집주인이 보호해주는 이 집이 아니면 우리 모녀는 어디라도 불안해서 못살아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지원을 받고는 있지만 방세를 제하면 약 값 및 기본적인 생활비를 쓰기도 빡빡한 상황. 그나마 이런 상황에서도 별 문제없이 학교를 잘 다니는 딸이 고마울 따름이다.

“애가 연극을 하고 싶어해요. 엄마와 본인이 겪은 아픔들,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을 말로, 몸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하죠. 연극학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인 걸 잘 알지만 한 번도 도와주질 못해서 늘 미안해요. 어떡하죠. 우리 모녀 한시라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수는 있을까요?”


고개를 숙이고 본인의 얘기를 들려주던 그녀의 흐느낌은 끊길 줄을 몰랐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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