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세월호 희생자에 돌팔매를 멈춰라

등록일 2015년04월2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8분,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그 후 악몽 같던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세월호 인양과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은 아직도 거리에서 고통 받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의 더 큰 고통은 희생자들을 향한 무차별 공격과 모욕을 주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반면 세월호가 침몰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목숨을 던져 또 다른 생명을 구하려 애썼던 의인들의 이야기가 더 큰 울림으로 와 닿는다. 
세월호 승무원 박모씨(23)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배에 끝까지 남아 탈출을 돕다가 사망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을 생존학생들이 전했다. “너희먼저 구하고, 따라 가겠다.” 세월호 사무장 양모씨(46)는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 해. 수협 통장에 있는 돈 아이 등록금으로 써.’라는 마지막 말을 아내에게 남겼다.
결혼을 앞둔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모씨(28)와 사무직 승무원 정모씨(28)도 선내에 남은 승객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숨졌다. 단원고 2학년6반 남모(36) 교사는 탈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학생들의 대피를 돕다 사망했다. 2학년5반 이모(33) 교사는 난간에 매달린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실종됐다. 체육담당 고모(43) 교사는 제자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탈출을 돕다 본인은 나오지 못했다. 최모 교사는 SNS메시지를 통해 “걱정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따라갈게”라고 말했지만 끝내 나오지 못했다. 또 다른 김모 교사도 학생의 탈출을 돕다 자신은 나오지 못했다.
정모 학생은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주고, 선실에 있는 친구들을 구하려다 사망했다. 양모 학생은 침몰 직후 본인은 구조될 수 있었으나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선실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조모 학생은 배가 기울자 여학생 20여 명을 구해냈다. 박모 학생은 울고 있던 어린 아이를 급히 업고 탈출했다. 
제주도로 첫 출근하던 배관사 김모(59)씨는 주변사람들과 커튼을 묶어 학생 20여 명을 살려냈다. 3층 객실에 있던 화물 운전기사 김모씨(50)는 4층으로 이동해 10여 명을 구했다. 이밖에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구조를 도왔고, 전국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달려가 유족들의 깊은 상심을 위로하며 자원봉사에 나섰다. 이게 바로 보편적인 국민 정서다.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