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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제초제 살인사건 전모 밝힌 순천향대 '홍세용 교수'

독극물중독 과학수사공조…매장한 시신 부검으로 사건 재구성

등록일 2015년03월3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홍세용 교수. 그는 최근 온 나라를 경악시켰던 포천 제초제 살인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풀었다.

지난 2월 일가족 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검거됐다. 

사건의 내막은 경악 그 자체였다. 살인범으로 잡힌 노 씨는 평범한 주부였다. 2011년 노 씨는 전 남편이 마실 음료수에 치사량의 제초제를 넣은 것이 이번 사건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들은 연이은 사업 실패와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이혼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 남편은 음료가 든 병을 마신 뒤 사망했다. 이 장면을 본 목격자의 진술 등으로 사인은 ‘자살’로 일단락 됐다.

그리고 1년 후 재혼한 노 씨는 희귀 폐 질환을 앓았던 시어머니와 재혼한 남편을 또 다시 한 해에 모두 잃었다. 결과적으로 노 씨는 세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들의 죽음으로 20억원이 넘는 보험금이 손에 쥐어졌다.

그러나 보험사는 이를 단순 죽음으로 처리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고 판단했다. 보험사의 신고로 본 사건은 처음부터 재구성에 들어갔다. 수사팀은 끈질긴 추적 끝에 결국 노 씨가 음료와 음식에 제초제를 넣어 가족들을 살해한 사실을 밝혀냈다.

혐의는 있는데 물증이 없다

최근 온 나라를 경악시켰던 포천 제초제 살인사건은 하마터면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뻔 했다.

미궁에 빠져있던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천안의 한 대학병원 교수의 역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사당국에 2편의 자문서와 수많은 조언을 제공함으로써 살인 용의자인 노 씨의 살인행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2014년 가을 경기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은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농약중독연구소(소장 홍세용)를 찾았다. 독극물 중독에 대한 홍 교수의 명성을 좇아 자문을 구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수사당국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고의적인 살인 혐의점은 포착했지만 객관적인 물증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었다. 경찰은 잔뜩 싸들고 온 진료기록을 홍 교수 앞에 풀어 놓고, 독극물 중독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홍 교수는 수도권 대형 종합병원에서 발급한 세 사람의 사망진단서를 주목했다. 사망 원인은 모두 비 특이적인 폐렴이었다.

진료기록을 꼼꼼히 살핀 홍 교수는 그들의 사망 원인이 제초제 파라콰트 중독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두 번째 남편은 치사량 이하의 제초제를 여러 번 반복 음독했을 것이라는 자문서를 작성해 주었다.

경찰은 홍 교수의 자문으로 농약을 이용한 살인의 확신은 얻었다. 그러나 노 씨의 혐의를 입증할 단서가 없어 막막한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두 사람은 화장했고, 나머지 한 명도 매장한지 1년6개월이 경과했기 때문이다.

홍세용 교수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농약중독연구실에서 독성물질을 실험하고 있다.

매장한 시신에서도 부검하면 나온다

“틀림없이 부검하면 나온다. 그 약은 다른 농약과 달리 사체 내에서도 오랜 기간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랜 시간이 경과한 시신이라 성분 검출에 실패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경찰관들에게 홍 교수는 “분석할만한 폐 조직이 남아 있지 않다면, 시신의 폐 부위 아래 흙을 조사해도 나온다”며 확신을 줬다. 경찰은 어렵게 검사지휘를 받아내 부검을 진행했다.

그 결과 홍 교수의 말처럼 시신의 폐를 비롯한 몇몇 신체 부위에서 강력한 제초제 ‘파라콰트’ 성분이 검출됐다. 제초제를 이용한 독살이라는 사실은 증명이 된 것이다. 이제는 누가 농약을 먹였느냐만 밝히면 된다. 그러나 경찰관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차에 용의자의 딸이 지난해 8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폐렴 치료를 받았던 진료기록이 홍 교수에게 전해졌다. 홍 교수는 딸의 병증이 이미 사망한 의붓아버지의 증상과 매우 유사함을 발견하고, 추적 관찰을 조언했다.

이후 2015년 2월 초 딸이 또 다시 같은 병원에 폐질환으로 입원했다. 이번에도 홍 교수는 경찰들이 전해준 진료기록을 검토해 파라콰트 중독임을 확인해 줬다. 거의 동시에 이어진 국과수 조사에서도 딸의 혈액과 소변에서 파라콰트가 검출됐다. 그렇게 해서 용의자 노 씨는 2월27일 전격 검거됐다. 결국 명확한 증거들을 피할 수 없었던 용의자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말았다.

머리카락으로 농약중독을 진단한다?

경찰수사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추진력을 제공하고, 살인의 전모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다름 아닌 농약 등 독극물 중독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홍 교수의 조언들과 장문의 자문서 두 편이었다.

한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추측성 보도와 사실과는 다른 근거없는 내용의 보도들이 이어졌다. 수사당국과 홍세용 교수의 긴밀한 공조가 간과되고, 중요한 사실이 호도된 것이다.

사건의 전모가 마치 피해자 가족들의 제보와 머리카락 성분분석에 의해 밝혀진 것이라는 잘못된 보도까지 나왔다. 이에 실제 현장에서 활약한 경찰관들과 수사당국을 도왔던 홍 교수는 황당했다.

홍세용 교수는 “머리카락 성분분석으로는 농약중독 사실을 알아낼 수 없다”며 “근거도 없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보도되면, 정보를 잘 못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더 위험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이어 “정보 홍수의 시대에 언론보도 만큼은 진실을 담아야 한다”며 “잘못된 보도를 접한 시민들이 만성 농약중독 진단을 위해 애꿎은 머리카락을 잘라서 가져오는 일은 없어야 겠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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