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성거산에는 거룩한 역사가 잠들어 있습니다”

정지풍 신부, "줄 무덤은 신앙의 자유를 외치다 순교한 역사 흔적"

등록일 2014년11월0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정지풍 신부는 “성거산 성지를 찾는 모든 방문객들은 종교를 떠나 당시 역사적 배경을 한 번쯤 생각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성거산 성지는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갈구하던 민중들이 학살당한 슬프면서도 거룩한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단풍을 즐기러 찾아오시는 일반 관광객들께서도 종교를 떠나 당시 역사적 배경을 한 번쯤 생각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성거산 성지를 10여 년간 지켜온 정지풍(67·아킬레오) 신부의 말이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 이후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한국의 성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성거산 성지 쉼터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정지풍 신부의 집전으로 열린다.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어들었던 곳이 성거산 성지다. 10월25일 천안시 북면 납안리 산46-1번지에 자리한 성거산 성지를 찾았다. 정지풍 신부는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을 위해 매일 오전 11시 미사를 집전한다. 이날 미사를 마친 정지풍 신부가 순례자들에게 두 곳의 줄 무덤을 비롯한 십자가의길, 순교자의 길, 소학골 교우촌 등 성거산 성지를 안내했다.

성거산 성지 주변은 신유박해(순조 1년, 1801년) 전후로부터 병인박해(고종3년, 1866년)에 이르기까지 순교자들이 피신해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유서 깊은 7개의 비밀교우촌이 있다. 또 박해가 끝난 후에도 1921년까지 교우촌들이 산재돼 있어 선조들의 특별한 신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경기-충북-충남 3개도가 만나는 차령산맥 줄기 
 

성거산 성지 줄 무덤.

경기, 충북, 충남 등 3개 도가 접경한 곳에 자리잡은 성거산 성지는 한국의 성지 중에서 보기 드문 해발 579m 차령산맥 줄기로 빼어난 경관을 간직해 사계절 순례자는 물론 일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특히 들꽃이 만개하는 봄과 오색단풍이 물드는 가을철에는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성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 통일을 위해 직산면 수헐원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동쪽 산에서 오색구름이 영롱함을 보고 신령이 사는 산이라 하여 거룩할 성(聖)자와 거할 거(居)를 써서 성거산이라는 명칭이 정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는 세종대왕이 성거산에 와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조선 말 신유박해에 이은 병인박해까지 천주교 신자들이 탄압을 피해 찾아들었고, 무명의 순교자들이 묻혔다. 그러고 보니 성거산은 시대에 따라 신앙의 대상은 서로 달랐어도 종교적인 인연이 깊은 땅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거산 순례, 마음의 준비부터 하라”
 

성거산 성지를 찾은 순례자들이 순교자의 길을 지나 교우촌으로 향하고 있다.

“성거산 성지를 방문하고자 하는 분들은 미리 공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특정 종교를 박해하고, 신앙을 지키려는 민중을 참혹하게 학살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움막과 땅굴에서 죄인처럼 숨어 살다가 불살라지고, 매 맞고, 숨을 거둔 선조들이 잠든 곳입니다.”

정지풍 신부는 성거산 성지 방문객들을 향해 호소했다. 술을 마시고 소란스럽게 떠들거나, 자연을 훼손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순례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한편 성거산 성지는 현재 순례자는 물론 관광객들을 위한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0여 년에 걸쳐 성지를 사랑과 정성으로 가꾸어 온 정지풍 신부는 몇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그건 바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옛 것 그대로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대 감각으로 인위적인 각종 편의시설과 개발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정지풍 신부의 원칙이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난하고,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정치적으로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해 성지의 무분별한 개발과 관광 상품화 하려는 시도는 자칫 교황방문과 순교에 대한 역사적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정지풍 신부가 전담사제로 있는 지난 10년간 성거산 성지 곳곳에는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 야외 미사를 위한 광장 등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그의 숨은 노력과 흔적들이 그대로 녹아있다. 미술을 전공한 정지풍 신부는 대전 카톨릭 신학대학교에서 종교미술을 강의한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