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절된 공간에는 세상에 알리기조차 두렵고, 슬프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아산시 온천대로변에 위치한 한 허름한 건물. 이곳에는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쪽방에 여섯 모녀가 살고 있다.
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쪽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슬을 피하기 위해 들여 놓은 신발들이 뒤죽박죽 엉켜있다. 시선을 돌리자 눅눅한 이불더미와 정리되지 않는 옷 뭉치 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 흔한 옷장 하나 없다. 옷장이 있다 하더라도 들여 놓을 공간이 없다.
낡은 가스렌지 주변에는 때 묻고 찌그러진 냄비 몇 개와 밥그릇 등 부엌 도구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주방에는 사람 한 명 서서 설거지 할 공간이 간신히 나온다. 집안에는 무엇 하나 온전한 물건이 없다.
이 단절된 공간에는 세상에 알리기조차 두렵고, 슬프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가족을 보호해야 할 아빠라는 존재가 한마디로 ‘인면수심’의 ‘악마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 다섯…그리고 아빠
회사에 다니던 박영순(48·가명)씨는 25년 전 아산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남편 김성식(54·가명)씨를 만났다.
당시 아산에서 택시영업을 하던 남편은 생활능력도 있었고 크게 나무랄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던 둘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5명의 딸이 태어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몸은 40대에 당뇨와 심장질환 합병증이 찾아와 생활능력을 상실하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됐다.
결국 일곱식구는 기초수급비에 의존해 살아가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때부터 박영순씨는 인근 식당 등에 허드렛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은 조금씩 난폭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박영순씨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하더니 점차 그 폭력은 어린 딸들에게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한 두 번 때리더니, 점점 폭력의 수위가 높아졌다. 밤새 매 맞은 엄마는 식당에 돈 벌러 나가고, 또 밤새 매 맞은 딸들은 울면서 학교로 가는 생활이 일상이었다.
남편은 최근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여섯 모녀를 폭행했다. 가족들은 그렇게 남편의 폭력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어도 남은 가족들이 걱정돼서…”
“귀가시간이 늦었다고 때리고, 기분 나쁘다고 때리고, 밥 먹다가도 때리고, 이유 없이 또 때리고….”
“우리 가족은 매 맞는 것이 일상생활이 돼버렸어요. 아빠의 매를 피하고 싶어도 남은 가족들이 걱정돼서 도망도 못가요. 누군가 아빠의 매를 피해 도망가면 남은 가족들이 더 난폭해진 아빠의 매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아빠의 폭력에 엄마와 다섯 자매는 10년도 넘게 짐승처럼 맞고 살았어요. 짐승도 제 새끼는 목숨 걸고 돌보는데…”
최근 여섯 모녀를 끔찍하게 괴롭혔던 아빠는 경찰에 체포됐다. 누군가 이들 여섯 모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아빠라는 존재는 폭력 이외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패륜을 자신의 딸들에게까지 저질렀던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아빠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싶어요”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여섯 모녀를 끔찍하게 괴롭혔던 아빠는 경찰에 체포됐다. 누군가 이들 여섯 모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여섯 모녀가 꿈꾸는 삶은 아빠라는 끔찍한 기억을 지워 버리는 것 뿐이다.
“지난 10여 년간 온 가족이 아빠의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다. 우리 가족들에게 아빠라는 기억은 씻을 수 없는 상처다. 이제 그 아빠의 기억과 상처를 깨끗이 지우고 싶다.”
여섯 모녀는 아직도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다. 지금 생활하는 바로 그 공간에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받았던 두 명의 딸은 정신치료를 받고 있다.
보증금 50만원, 월30만원에 살고 있는 이 쪽방에는 화장실조차 없어 인근 공중화장실을 이용한다. 여섯 모녀는 일년 내내 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딸린 집에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채 아빠의 학대를 받아왔던 이 공간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기초생활 수급비와 엄마 박영순씨가 식당 허드렛일로 받아오는 50여 만원이 전부다. 주변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다.
도움 주실분: 아산시청 사회복지과(담당 정선희) 540-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