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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과 인연 끊긴 김씨, 손녀딸이라도 보고 싶건만…

불편한 몸 치료도 받기 힘든 독거노인 김춘자(68·가명)씨의 한가위

등록일 2014년09월0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김춘자(68·가명)씨. 늦여름 햇볕이 따가웠던 지난주의 어느 오후. 천안시청 사례관리요원과 함께 천안 서부 변두리에 위치한 김춘자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좁은 동네 흙길을 지나 들어간 낡은 집의 작은 별채가 바로 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부엌하나가 달린 조그만 방은 보증금 없이 월세만 20만원이라고 한다. 부실한 모기장 문을 열고 기자를 맞은 할머니는 말문을 트기 전부터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복지사는 ‘벌써부터 울지 말라’며 채근하지만 할머니는 연신 울먹울먹. 호흡을 가다듬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내 나이 올해가 칠십이요. 자녀는 아들 셋에 딸 하나 있어요. 그런데 누구하나 들여다 보는 자식이 없어요.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보니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서러운 생각만 든답니다.”
방안 구석 매트리스에 불편한 몸을 앉힌 할머니는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낸다.

나를 잊었던 삶, 하지만 그녀를 잊어버린 자식들

김씨 할머니의 남편은 공사판의 일용직 노동자였다. 고된 노동이 일상이었던 그는 늘 술에 빠져 있었고 30년 전, 처자식들을 남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나이 40에 혼자된 김씨 할머니는 시내 시장에 나가 과일이나 생선을 떼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막내를 업은 상태에서 머리에 고무다라를 이고 이동네 저동네를 돌아다니며 억척을 떨지 않으면 살기 힘든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나이를 먹어 가고 세상이 변하면서 그 일이 어려워지자 10여 년 전부터는 폐품을 모아 팔기 시작했다. 집을 중심으로 왕복 10㎞ 가까운 거리를 오가며 부지런히 박스와 고물들을 주우러 다니던 시절. 한참 열심일 때는 조그만 공터를 1년에 20만원 정도에 임대해 모았다 팔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그 주변에서는 ‘박스아줌마’라면 누구나 김씨 할머니를 떠올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의 노력과는 달리 장성해 분가한 자녀들과 그녀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온 가족이 함께 보내는 한가위지만 이런 명절 분위기는 김씨의 외로움을 더 아프게 후벼 팔 뿐이다.

결혼 후 분가했던 큰 아들은 오래지 않아 이혼한 뒤,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들어와 김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도박에 손을 대 사채를 끌어다 쓰고 커다란 빚을 지게 됐다. 빚쟁이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달리던 상황에서 결국 이혼한 큰며느리가 지난 겨울 고등학교 1학년 손녀를 데리고 가버리자 김씨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둘째 아들은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두 아들을 데리고 어렵게 사는 형편이고, 셋째 아들 역시 처갓집에 얹혀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딸은 결혼해서 천안에 자리를 잡았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거의 왕래가 없이 가족과의 인연을 거의 끊은 상황이다.
자녀들을 거두느라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말하는 할머니지만 정작 부모자식간 살가운 정은 키우지 못하고 원망과 오해와 서운함만 남긴 채 홀로 쓸쓸한 노년을 맞게 된 것이다.

자식들의 그런 태도에는 필시 무슨 다른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그저 짐작만 할 뿐. 김씨 할머니는 끝내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 놓지 않았다.

상처 입은 심신, 손녀에 대한 그리움만 커져가

큰 아들이 도박 빚에 야반도주하고 애써 기른 손녀도 며느리가 데려가 버렸던 지난 겨울. 김씨는 빙판에 넘어져 무릎을 크게 다쳤다. 나이가 들어 안 그래도 불편했던 무릎이어서 고쳐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의사는 무릎을 수술해도 아픔은 여전할 것이라며 수술을 할지 말지 나보고 정하래요. 비용도 비용이지만 움직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에요.”

이전부터 속이 좋지 않아 식도염, 위염 진단도 받았고 혈압약도 늘 먹고 있는데 무릎까지 고장이니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도 쉽지 않은 상황. 김씨 할머니는 독거노인이 돼 외로움이 커진 요즘, 그나마 같이 살며 정성을 쏟았던 큰 손녀가 못 견디게 보고 싶다며 흐느낀다.

“작은 친목회가 하나 있어 가끔 아는 사람들을 만나긴 하지만 내가 이 정도로 어렵게 사는 지는 아무도 몰라. 창피시러서 무슨 얘기를 하겠어. 그저 우리 손녀 한 번만 보고 싶어. 지나가는 학생들만 보면 손녀 생각에 눈물만 나요. 학교 근처를 기웃대기도 해봤지만 만날 수가 있어야지.”

선선한 아침저녁 찬바람은 벌써부터 그녀의 애달픈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하고 있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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