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만수(가명·45·천안 성정동)
“혈당, 혈압, 간 수치 모두 조절이 안 되서 입원했어요. 담당의사 얘기로는 약으로 조절이 가능한 단계에서 퇴원을 할 수 있다는데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어요. 병원에 오면 또 친구에게 어렵게 돈을 꾸어야 할 텐데 벌써 걱정이에요.”
유만수(가명)씨는 힘없이 한숨을 내쉰다.
40대 중반, 한참 정력적으로 일할 때지만 유씨에게 그런 시절은 이제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하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겪어야 했던 불우한 유년시절, 약한 몸에는 늘 가난과 병이 친구처럼 따라다녔다. 그동안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한 번 보답이라도 하고 싶다는 그이지만 그런 기회가 언제쯤 올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부모님을 여읜 6남매의 삶은…
유만수씨의 고향은 아산 탕정이라고 한다.
6남매 중 넷째지만 아들로는 장남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풍파를 겪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뇌수막염으로 어머니를 여의었고, 중학교 1학년때는 아버지가 천식, 결핵을 동반한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6남매의 삶은 말 그대로 부평초 같았다.
위의 세 누나는 모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유씨와 동생 둘은 큰집에 들어가 살게 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한 세 남매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친구집을 전전하거나 비어있는 옛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중학교에 진학했던 유씨는 어느 날 빈혈과 어지럼증으로 쓰러졌다. 병원에서 얼마간의 치료를 받고 학교에 돌아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학적은 없어져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 중학생 유씨는 결국 중학교 중퇴라는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행히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큰 누나가 중학교까지 동생들을 가르치라며 약간의 돈을 보내주어 그나마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큰 누나는 결혼 후에도 동생들을 거두어 천안에 자리를 잡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누나의 헌신은 본인의 가정이 깨지는 사유가 돼버렸고 결국엔 누나도 이혼을 하게 됐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흩어진 6남매는 각자의 바쁜 생활에 매몰돼 서로 연락을 하거나 교류할 짬조차 갖지 못했다. 그저 가끔가다 큰 누나가 연락을 해오고 간간히 형제들의 소식만 듣고 있는 수준일 뿐이다.
방세도, 도시가스도, 휴대폰도 끊겨
중학교를 다 다니지 못했던 유씨는 어려서부터 보일러 공사를 하던 매형을 따라다니면서 일을 배웠다. 20대 때는 공고 전자과를 나온 친구의 배려로 전자제품 수리 하청업체에서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한 기술도, 그렇다고 튼튼한 몸을 갖지도 못했던 그의 생활은 늘 불안불안 할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결혼은 물론, 연애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30대 중후반 쯤에는 고혈압을 시작으로 당뇨가 찾아왔고 심장, 신장, 간에 문제가 잇따랐다. 여기에 지방간, 심장협심증, 이상지지혈증 등으로 이제 집 밖 나들이조차 멀리 나가면 불안한 초로의 40대. 그게 유씨의 현 주소다.
유씨가 사는 곳은 성정동에 위치한 4층 원룸건물의 방 한칸짜리 월세방. 보증금 30만원에 월세가 30만원이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된 것은 5~6년 전인데 현재 매월 40여 만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월세를 내고 나면 빠듯한 생활비인데 지금처럼 가끔 병원을 오게 되면 바로 마이너스 인생이 되고 만다. 최근에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도시가스도 끊겼고, 방세도 밀리고, 휴대폰 마저 중단된 상황.
“병원에선 몸이 좋아지려면 운동을 하라는데 운동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죠. 어쩔 때 집에 혼자 있으면 나쁜 생각도 많이 해요. 그런 날 방세 독촉이라도 받으면 정말 힘이 쪽 빠지죠. 정말 몸이라도 좋아져서 그동안 조금씩이나마 계속 도와주었던 친구에게 시원하게 갚아 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힘없이 읖조리던 유씨의 작지만 간절한 바람은 언제쯤에나 이뤄질 수 있을까?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