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윤복남(62·65)부부
“사실 어려워도 어디다 도움을 청해야 할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도와주는 분들이 계실지 전혀 몰랐어요. 어려운 삶이지만 이런 인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살 맛’이 납니다. 너무나 감사드려요.”
늦은 봄볕이 따가운 지난 주, 신당동 외곽 한 공장 앞에 자리잡은 가건물을 찾았다. 이 곳은 60대의 노부부 이수지·윤복남씨가 운영하는 작은 중식당이 위치한 곳이다. 간판 대신 붉은 현수막이 걸려있는 이 식당 메뉴판에는 자장면 2500원, 짬뽕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 눈에 들어온다.
부부의 삶의 터전인 이 식당에 불이 난 것이 지난 4월초니 다시 가게를 열게 된 것은 꼭 한 달 만이다. 하루하루가 힘든 이들에게 이번 화재는 결정적인 좌절의 위기일 수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오히려 그 잿더미 위에서 희망의 싹이 틔워지고 있다.
경주처녀와 서산총각의 만남은…
부인 이수지씨의 고향은 원래 경북 경주다. 남편 윤복남씨의 고향은 충남 서산.
각자의 고향을 떠나 인형공장, 가죽공장에서 일하던 여공과 중식당에서 일하던 청년의 인연은 여름날 놀러갔던 서울 관악산에서 맺어졌다. 부부는 경기도 의정부에 신접살림을 차렸고 1년 후에는 임신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그 직전부터 부인 이씨의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기 시작했다.
“당시 몸이 많이 좋지 않은 것은 물론, 혈압이 너무 높았어요. 결국 임신 4개월때 의사의 권유로 중절수술을 했답니다. 사실 이제껏 시집와서 그토록 헌신적인 그이한테 애하나 낳아주지 못하고 힘들게만 했어요. 아는 사람들은 그런 남편 없다고 업고 살아야 한다 그러더라고요.(웃음)”
이후 동두천에서도 장사를 했던 부부는 남편의 고향 서산에 중국집을 차렸다. 하지만 형편이 좀 나아질만 하면 그 때마다 사기를 당하던지 큰일이 터지곤 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간의 갈등이 극심해졌던 이씨는 얼마 전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위해 개명까지 했다.
천안에 온지는 이제 20년 째. 신장이 좋지 않아 늘 투석을 해야 하다보니 아예 대학병원과 가까운 천안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부부는 천안에 오자마자 쌍용동C 병원 후문쪽에 월세 15만원짜리 가게를 얻어 중국집을 열었다. 이후 천안공업대학 인근 에서도 장사를 하던 이들은 바로 지난해, 지금의 장소에 자리를 잡게 됐다.
잿더미 위에서 틔워지는 ‘희망의 싹’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장이상으로 극심히 안 좋아진 부인 이씨의 몸은 이들 부부에게 늘 커다란 짐이었다.
10여 년을 신장투석을 위해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면서 건강한 ‘신장이식’은 꿈이자 목표가 됐다. 그 과정에서 장기이식을 해 준다는 사람에게 사기도 여러 번 당했다. 병원에 갈때마다 소개비, 접대비로만도 수천만원이 들었다.
결정적 인연은 심신이 피폐해져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먹고 나서야 찾아왔다. 대전에 위치한 번듯한 회사의 중역이었다는 기증자의 선행 덕에 이씨는 신장을 이식받고 숙원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올 1월 위암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4월에는 옆 사무실에서 옮겨 붙은 불이 가게를 모두 태워버리고 말았다.
30년 가까이 약한 몸으로 고생한 아내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부은 남편은 당장 하룻밤 잘 곳조차 변변치 않았다. 그때 소방관이 주민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드디어 복지의 손길이 내밀어 졌다.
현재 이들은 복지정책과 사례관리지원팀의 도움으로 긴급생계비도 지원받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한 상태로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뵈지만 속깊은 남편은 이제 새 삶이 의욕이 솟아난다고 한다.
“누구에게 빚 지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인데 1월에 위암수술 때문에 처음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300만원을 할부로 긁었어요. 장사라도 잘되면 좋은데 늙은이 둘이 외진 곳에서 하다보니 가스비가 80만원이나 밀릴 정도로 갑갑하죠. 하지만 아내 몸이 조금이나마 좋아지고 관심을 가져주고 도와주려는 분들도 만나게 되니 더 열심히 살고 싶어져요. 바라는 건 뭐 있나요? 아내가 안 아프고 빚 없이 살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전부에요.(웃음)”
<이진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