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아이들과 살 수 있는 집의 보증금이 부족해요.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어떻게든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4월이면 첫돌을 맞는 쌍둥이들의 돌잔치만은 꼭 해주고 싶은데…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기자 앞의 아기엄마는 당장 닥쳐있는 막막한 생활고와 안타까운 바람들을 토로한다. 아직 앳된 모습의 그녀는 쌍둥이들의 누나라고 해도 될, 만 17세의 청소년이다.
인영이는 고2이었던 지난해 4월 쌍둥이 딸들을 출산했다. 많지 않은 나이지만 그녀가 지금것 겪어 온 삶의 이력은 다른 또래 친구들은 TV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이다. 바람 앞의 촛불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17살 쌍둥이 미혼모 인영이는 아이들과 함께 거친 세파를 잘 이겨내며 살 수 있을까?
부모의 이혼, 친구의 죽음, 임신과 출산
“원래 고향은 충남 서산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저희 남매는 아빠하고 함께 살았죠. 아빠는 곧 재혼을 하셨어요. 나중에 중학교에 입학하고 엄마와 큰엄마가 저희들 몰래 연락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전 바로 엄마를 찾아 나섰죠. 경기도 안산에서 결국 엄마를 만났고 중2때부터 엄마랑 같이 살기 시작했어요.”
스스로 모범적인 청소년은 아니었다고 고백하는 인영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초·중학생이 중간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아픔과 성장통은 다 배제하고 그녀는 담담히 자신의 사연을 이어갔다.
“중1때부터 사귄 친구가 있었어요. 고1때 그 친구가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 일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정말 커다란 상처로 남았죠. 의사선생님은 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라고 조언하셨죠. 그러다 타투리스트였던 아기들의 아빠를 만나게 됐어요.”
인영이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아기아빠 역시 안정적이지 못한 일을 하는 25살의 청년일 뿐이었다. 처음 임신을 알게 되자 그는 ‘같이 잘 키우자’며 그녀를 다독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임신 3개월이 넘어가자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대며 연락을 끊었고 결국 이별하게 됐다.
주변에서는 중절하라는 협박에 가까운 조언들이 이어졌지만 인영이는 끝내 아이들을 지켜냈다. 인영이는 또래에 비해 너무나 빨리 어른이 되었다.
‘쌍둥이 자매의 이름처럼 행복해 지길’
임신상태였던 고등학교 1학년 인영이는 수소문 끝에 경기도 용인에 있는 미혼모 보호시설 ‘생명의 집’에 들어갔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그곳은 위기에 처해있는 복지사각지대의 산모들을 보호하는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7개월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그녀는, 수녀님들의 소개로 마산 청소년 쉼터에 있다가 2013년 4월 제왕절개로 쌍둥이 딸을 출산을 하게 된다.
1주일간의 입원치료가 끝나고 마산의 다른 공동가정시설에서 몸조리를 한 인영이는 다시 용인의 시설에 입소했다가 지난해 6월, 오빠가 사는 성환의 낡고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인영이의 아버지는 자신을 버리고 엄마를 찾아 간 자식들에 대한 분노, 남매들의 방황, 딸의 이른 출산 등을 인정하지 못하고 인연을 거의 끊은 상태다. 이혼했던 어머니는 홀로 작은 사업을 하며 삶을 꾸리려고 5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지금은 신장이 나쁜 상태로 낮은 임금의 고된 일을 하며 친구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부모님이 계신 만큼 그녀는 독립적인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정부로부터 육아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쌍둥이의 분유값만 한달에 30만원에 달하는 상황. 주거비 부담은 기본적인 양육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금 구한 집이 보증금 300에 월30만원이에요. 엄마 친구가 보증금200만원을 도와주셨지만 아직 100만원은 미납한 상태에요.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고 맡길 수 있다면 아르바이트도 하고 직업도 구해서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도 있어요.”
기자와 동행했던 시청 복지정책과 사례관리팀의 김진숙 선생님은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한 각종 미혼모 지원사업 등을 신청해주고 여러 가지 자원들의 연계를 약속해 주었다.
순우리말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의 ‘가온’, 세상 즐거운 일이 다 온다는 ‘다온’.
그녀가 직접 지었다는 쌍둥이 자매의 이름처럼 이 세 모녀가 지금의 고비를 잘 벗어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길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빌어주었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