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대전고법에서 열린 인애학교 성폭력사건의 피고 이모 교사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5년형이 선고됐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교육공간인 교실과 기숙사 생활실 등에서 성범죄를 범했고 수업 중에도 피해자들을 추행하는 등 범행의 수법 자체가 불량하다. 또 유사한 범죄가 상당기간에 걸쳐 반복되고 있어 그 죄책이 매우 무겁다.”
천안 성거읍에 위치한 공립특수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지적장애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이모씨(48)가 항소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이원범 부장판사)는 지난 12일(수) 오후4시30분 열린 항소심에서 검찰 측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대부분 유죄로 인정해 이씨에게 징역 15년, 정보공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10년을 선고했다.
‘천안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특수교사였던 이씨가 지적장애 학생 6명을 교내에서 추행하거나 성폭행 하고, 성폭행한 장면을 목격한 학생은 흉기로 협박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사건이다.
2012년 9월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검찰이 구형한 17년 보다 중한 징역 20년형을 선고했고, 피고는 이에 항소해 재판은 벌써 3년째 계속 진행 중이다.
이번 선고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재판부가 지적장애 학생들의 피해사실 진술을 전적으로 신뢰해 가해자에 대한 유죄입증의 증거로 인정하고 판결한 것이다.
이날 재판부는 “성범죄는 그 성질상 피해가 회복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이며 피해자들은 모두가 지적장애자로서 범행에 취약하고 그들의 장애로 인해 제대로 범행의 내용을 밝히지 못하기 때문에 장애인 대상 성범죄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엄중처벌해 범죄에 대한 사법적 경고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씨는 지적장애 학생들을 교육하는 특수학교 교사로서 이들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교육해야 할 임무를 망각한 채 자신이 맡고 있는 장애학생들을 성적욕구를 만족시키는 대상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함으로써 그들의 인격적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공소제기한 13건의 내용 중 4개건은 받아들이지 않고 1심 20년형에서 5년을 감형했다.
피해자 가족과 해당학교 학부모,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을 이번 판결을 다행스러워 하면서도 재판부의 감형 판단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며 상고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재판부, 피해학생들의 일관되고 공통된 진술 신뢰
장기간의 재판기간 동안 피고측은 피해자 진술의 불확실성, 시민단체 쪽의 공작 등을 주장하며 계속 무죄를 주장해 왔다.
피고 이씨 측에 서서 ‘특별변호인’의 역할을 자임해온 원모씨는 ‘60일간 150건의 사실을 조사해 본 결과 이 사건이 천안의 한 장애인단체대표가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작한 범죄였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원씨는 피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학생이 성인만화나 음란물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또 ‘성추행을 목격한 학생을 위협할 때 사용했다는 양날톱은 실제 학교에는 없는 것이고, 국과수 검사 결과 성폭행 과정에서 사용했다는 돗자리용 매트에서는 정액 음성반응이 나왔다. 학생 속옷과 손톱에서도 이씨의 DNA는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일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 더불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추가 기소 사건에서는, 무죄까지 선고받아 혹시 전체적인 재판의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났다.
이씨는 목공수업시간 중 목공실에서 이 학교 지적장애 2급 여학생(18)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뒤에서 어깨 너머로 웃옷 안에 손을 집어 넣어 가슴을 만져 추행했다는 혐의로 추가 기소됐었다.
당시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유죄가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충분하지 못해 형사재판 원칙에 따라 무죄가 판단된다’고 밝혔고 재판부는 배심원의 의견을 존중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탄력을 받았는지 피고측은 2013년 7월 재판부에 요청해 인애학교에 대한 현장검증까지 벌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수차례의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에게 충분한 자기변호의 기회를 보장했고 이를 우려스럽게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피해학생들의 일관되고 공통된 진술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피고 이씨에게는 15년형이라는 중죄를 선고됐다.
원고측도 감형에 유감, 결국 대법원까지 갈 듯
천안여성회 오은숙 대표는 “형량이 감소한 것이 유감이다. 재판부가 13개중 공소건 중 4개를 인정하지 않았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받은 내용이 2심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판단된 것도 있었다. 추가 기소된 사건으로 열린 국민참여재판 무죄판결도 감형의 주요 원인이었다. 피고가 이미 3년 가까이 구금돼 있기에 앞으로 10년도 안 되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일부 불안해하는 학부모들도 있다”고 말했다.
인애학교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해 온 노동당 충남도당 당원협의회 김현순 위원장은 “재판과정에서 천안시의회 모의원, 일부 교사들의 경우 공공연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가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학생과 가족들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주었다. 이들은 즉각 사과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당 충남도당은 지난 13일(목) 이번 사건과 관련한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폭력 사건 일반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능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으로 인해 가해자가 처벌되지 못하는 무수한 경우를 고려해 본다면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새로운 관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을 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이 최소한 장애인 대상의 성폭력 사건에서 진술능력을 빌미로 해 빠져나가려는 시도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적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직 피고 측에서는 확실한 상고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황.
하지만 원고 측에서마저 감형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검찰에 상고를 요구할 분위기여서 이번 사건에 대한 최종판단은 대법원에서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