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명물 호두과자가 천안의 대표명물로 널리 알려져 오는 지난 세월 이야기가 있다.
천안명물 호두과자는 전국 어디에서나 더욱이 해외에서까지 많은 애호가들에게 알려져 있는 천안명품 명물이 되었다.
지난날 천안을 거쳐가는 열차나 버스 안에서 천안명물 호두과자를 호객하는 소리는 한 시대 볼만한 소리였다. 열차객실이나 버스 안의 비좁은 틈바구니를 바쁘게 빠져 다니며 천안명물 호도과자를 호객하는 소리는 호두과자를 천안명물로 유명하게 알려지게 한 장본인이랄 수 있다.
천안역에서 승차하여 조치원과 온양 그리고 성환, 평택에까지 필요한 사람을 찾아 분주하게 오가며 외쳐 부르는 천안명물 호도과자 소리였다. 한 팔에 호두과자 상자를 여러개 들고 다른 팔로는 틈새를 해쳐가며 맡겨놓은 손님을 찾듯이 ‘천안명물 호두과자’를 불러대는 소리였다.
“천안명물 호두과자가 있어유, 호도과자! 천안의 명물 호도망주! 때를 놓쳐 시장하신 아저씨, 아주머니 식사대용 호두과자가 있습니다. 영양가 높은 호도망주, 천안명물 호두과자가 있습니다.” “시어머니 선물, 시아버지 선물 천안명물 여행선물용 호도과자가 있어유!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유.” “천안명물 호도과자! 자 지나갑니다. 놓치지 마세유! 천안명물 호도망주, 여행선물용 천안명물 호두과자!” “따끈따끈한 금방 구어낸 고급과자 호도 만두 천안명물 호도과자가 있습니다. 친정어머니, 친정아버지, 동생, 조카선물 천안호도과자가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지나갑니다. 감사합니다. 예! 여기 있어요. 여기도 있어요.” “천안명물 호도과자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서방님, 아주머님 선물! 정력에 좋고 얼굴 예뻐지는 호도 고급과자, 영양가 자양분이 넘치는 호도과자 천안명물 호도과자가 지나갑니다.”
천안명물 호도과자를 호객하는 소리는 사라졌어도 호도과자가 천안특산품 천안명물로 오늘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의 시대정서는 호두과자 속에 지금도 살아있다.
그때는 ‘호두’과자가 아니고, ‘호도’과자였다. 일제시대에도 호도과자는 천안을 오고 지나는 여행 길손들에게 기억에 남는 천안의 명물이었다. 증기기관차가 힘겨워 천안역에서 물을 채우는 짧지 않은 동안에 호도과자는 요기를 때우는 식사대용으로 요긴했다.
“덴안 메이부쓰 구루미 야끼! 천안명물 호도구이!”
“덴안 메이부쓰 구루미 카시! 천안명물 호도과자!”
천안은 일본말로 덴안이고 명물은 메이부쓰, 호도는 크루미, 그리고 구운 과자는 야끼 카시라고 한다.
알려진대로 일제시대에 천안의 일본인들이 천안 큰재빼기와 역전통에 자리잡고 상권을 행사 할 때이다.
1930년경 천안역 광장에 일본 양과자업자 히므라(志村)씨가 제과점을 운영했다. 천안명물 광덕 호도를 장려하는 행정지도에 따라 제과업자 히므라씨는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제과기술을 배워온 제과기술자 조귀금(趙貴金)씨와 협력하여 호도과자를 개발하였다.
쌀밀가루 빵에 앙꼬(단팥)를 넣어 빚으면 앙꼬빵인데 밀가루빵에 잘 알려진 광덕호도를 넣어서 구어내어 호도양과자, 호도빵, 호도만주, 호두과자가 만들어지게 됐다. 오늘날까지 천안명물로 전통을 이어오는 호도과자가 탄생한 것이다.
광덕호도는 품질이 좋기로 전국에 알려져 있고 외국에 수출까지 했었다고 한다. 천안 광덕호도는 껍질이 얇아 속 알이 실(實)하다는 평가였다.
해방이 된 후 호도과자 제과기술자 조귀금씨는 현 학화호도과자 자리에 학화(鶴華)호도과점을 개업하여 오늘에 이른다.
천안명물 ‘호도’과자 할머니 학화호도과자는 학화호도과자점의 등록상표이다. ‘호도’과자는 학화제과점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모든 천안명물 호두과자 제과업소에서는 천안명물 ‘호도’과자라는 상표는 사용할 수 없다.
천안명물 호도과자 시대의 신토불이 품질을 천안명물 호두과자 시대에 신토불이 품질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호두과자 업계의 천안명물 호두과자 품격과 품질을 개선하려는 힘겨운 노력은 우리시대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