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암 말기로 투병중인 최종복씨를 그의 아내 박하석씨가 돌보고 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연우야(가명)! 너만은 반드시 지켜주려 했는데…. 어쩌면 오늘밤을 끝으로 더 이상 너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잘 먹이지 못해서 미한하고, 잘 입히지 못해서 미안하고, 예쁜 공부방 하나 꾸며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
직장암 말기판정을 받아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최종복(66·배미동)씨와 손녀딸의 애틋한 사연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인연은 아름답다
충남 서천군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동갑내기 최종복·박하석씨는 부부의 연을 맺어 평생을 함께했다.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이들 부부는 부족하지 않은 살림으로 4남매를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인 막내 아들이 만삭이 된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가 연우다. 최씨 부부는 막내아들이 고3때 맺은 인연으로 태어난 연우를 맡아 지금까지 돌보고 있다.
최씨 부부가 연우와 함께 생활한 지도 어느덧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18년의 세월동안 최씨 부부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IMF와 금융위기 등 국내 산업 전반에 불어 닥친 태풍을 피하지 못한 최씨는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었다.
서울에서 당진으로 그리고 다시 아산으로 삶터를 옮기며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살림은 궁색해져 갔다. 최씨 부부가 풍파를 겪으며 거주지를 옮겨 다니는 동안에도 손녀딸 연우는 착하고 예쁘게 잘 자랐다.
“연우 대학등록금 마련해야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연우가 성악가의 꿈을 꾸기에는 너무도 높은 현실의 벽이 가로막고 있어, 노 부부의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연우는 올해 고3 수험생이 됐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연우는 열심히 공부해 상위권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연우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과 목소리로 성악가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상 스스로 포기했다.
최씨 부부는 연우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자신의 몸 하나가 밑천이며 전 재산인 최씨는 자신의 건강한 몸을 믿고 돈 되는 일을 찾아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그러나 그게 화근이었을까. 작년 10월 최씨는 혈변과 함께 몸에 이상 징후가 느껴져 병원을 찾았다. 진단결과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미 온 몸의 장기에 암세포가 전이돼 손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당장 돈이 급했던 최씨는 병든 몸을 이끌고 공사장을 전전했다. 그러다 쓰러져 혼자 힘으로는 대소변조차 가릴 수 없는 몸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
손녀딸 연우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진학을 희망하고 있지만, 현재 고등학교 등록금조차 밀려있는 형편이다. 방과 후 다른 친구들은 수능점수를 1점이라도 더 올리려고 학원으로 가지만, 연우는 돈을 벌기 위해 편의점과 레스토랑으로 간다.
새벽 6시에 시작되는 연우의 일상은 밤10시에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로 끝난다. 지친 몸을 버스에 기댄채 집에 돌아와서도 힘든 내색 하나 못하고 오히려 병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로한다.
밀린 공부를 하려고 잠시 책을 펼치면 어느새 새벽이다. 그리고 또다시 힘겨운 일상이 시작된다. 최근 새벽에 집을 나서던 연우는 할아버지께 한 통의 편지를 남겼다.
“저를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얼른 돈 벌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효도할게요. 얼른 나으셔서 같이 여행가요.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최종복씨는 연우의 편지를 보면서 한없이 억장이 무너졌다. 죽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연우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단 한번 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암 투병중인 할아버지에게 보낸 손녀 딸 연우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