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경씨는 자신도 신장이식을 받아야 할 병든 몸으로, 자신보다 더 위급한 남편을 돌보고 있다.
시할머니 23년, 시아버지는 6년, 시어머니 7년. 한미경(51·충남 아산시 실옥동)씨가 병으로 쓰러져 대소변도 못 가리는 시댁 어른들을 병수발하며 보낸 기간이다. 한미경씨가 겪은 인생은 사실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구하고 안타깝다.
그녀가 남편 천세석(51)씨를 만난 것은 23살 되던 해 친구의 소개로 시작됐다. 당시 남편은 서울의 한 보험에서에서 판매왕으로 뽑힐 만큼 유능한 직장인이었다.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인정받고, 늘 주변사람을 배려하는 정 많은 사람이었다.
천세석씨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한미경씨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호감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한미경씨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녀의 궁금증은 더해갔고, 그를 못 보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리움이 쌓여갔다.
그때부터 그녀는 천세석씨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아낸 천세석씨의 집은 충남 아산시 실옥동의 한 허름한 주택이었다. 그때 그녀가 목격한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대소변 못 가리는 시댁 어른들
그렇게도 가슴 졸이며 찾았던 천체석씨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세석씨의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세 분 모두 병으로 누워 있었고, 대소변이 방치돼 있었다.
한미경씨는 천세석씨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못한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천세석씨로 부터 사연을 듣자 한미경씨는 더욱 기가 막혔다. 할머니와 부모님이 병으로 눕자 형제들은 도망치듯 모두 떠나, 결국 천세석씨가 병든 세 분을 떠맡게 됐다는 것이다.
천세석씨는 당장 서울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차마 병든 가족들을 두고 갈 수 없어 그렇게 기약없이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평소 그렇게도 말끔했던 천세석씨의 당시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엉킨 머리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채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부터 한미경씨는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이 집에 머물며, 시댁 어른들의 병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살기위해 발버둥친게 죄인가
한미경씨가 병든 남편이 누웠던 이불을 가을볕에 말리고 있다.
“할머니 씻겨 놓으면, 아버지가 싸고, 아버지 씻겨 놓으면, 어머니가 쌓고…. 하루 종일 어르신들 배설물 냄새 맡으며 살았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한 분도 아닌 세 분이나 그것도 배부른 몸으로 한 겨울에 욕실도 없이 마당에서 나오는 수도꼭지 하나에 의지해 살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살기위해 발버둥 쳤지만 세상은 한미경씨 부부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했다. 처음에는 두 부부가 통닭집을 운영했다. 그러나 병든 가족들 때문에 배달이 생명인 통닭집에 전념할 수 없었다. 아기에게 제때 젖 물리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병든 어르신들은 일일이 말하기도 민망한 크고 작은 일들을 수 없이 저질렀다.
결국 천세석씨는 통닭집을 정리하고 골목수퍼마켓을 운영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가게를 지키는 것도 불가능했고, 대형할인매장이 곳곳에 들어서자 골목상권을 더 이상 지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시고 천세석씨는 아산시 쓰레기분리 사업장에서 계약직 근로자로 일하며 어느 정도 집안이 안정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젊은 시절 시부모 병수발에 몸을 혹사시켜서 그런지 한미경씨는 신장병에 걸렸다. 다행히 신장이식 공여자를 찾았지만 수술비 2000만원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정기적인 투석만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남편 천세석씨에게는 이미 손 쓸 수 없는 병이 찾아왔다. 4개월 전 병원을 찾으니 간경화 말기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남편은 이미 두 차례 위기상황을 넘겼고, 언제 또다시 위기가 찾아오면 생존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한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천세석씨와 한미경씨 사이에는 고2·중2 남매가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과 달리 어린 남매는 밝고 착하게 자랐다. 자식들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안일을 하며, 병든 부모를 걱정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할 법도 한데 여중생인 둘째는 매일아침 등교하기 전에 힘내라는 응원문구를 담은 쪽지를 엄마에게 건넨다.
그러나 두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한미경씨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들은 수학성적을 걱정하며, 수학학원에 다니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형편상 엄두도 못 낸다며 한탄했다.
어느 해 보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최근 선선한 바람이 불자 한미경씨는 가을 날씨를 반길 겨를도 없이, 곧 닥치게 될 겨울 걱정이 앞선다.
“이제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