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겸 영화배우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하지원(23)의 입에서 요즘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녀가 휴대전화에 얽힌 공포스럽고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잡지사 여기자로 열연한 영화 ‘폰’(감독 안병기·제작 토일렛픽쳐스)이 개봉 첫 주말에만 전국관객 30만명을 넘어서 흥행세를 몰아가고 있기 때문.
그래서 주연배우인 하지원도 영화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덩달아 정신없이 바빠졌다. 개봉 당일인 지난달 26일 광주의 극장에서 무대인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7월27일 서울, 7월28일 부산과 대구, 그리고 7월29일에는 수원의 극장을 찾아가 관객을 만났다. 특히 수원의 경우 수원 소재 영신여고를 졸업한 인연으로 무대인사를 자청했다.
영화 흥행에 신이 난 그녀는 휴가도 반납했다. KBS-2TV ‘햇빛사냥’과 영화 ‘폰’이 같은 시기에 촬영하는 바람에 몸이 축날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 그녀는 당초 ‘폰’이 개봉한 직후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날 작정이었다. 오래간만에 가는 휴가에 홍콩과 미국 등 해외 여행지를 놓고 고민하던 그녀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위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휴식을 겸한 여행도 잠시 포기했다. 가족도 모처럼의 여행을 기대했던 터여서 실망감이 적잖았다. 그러나 일단 ‘폰’이 초반 관객몰이에 성공한 결과(?)여서 휴가를 포기한 대가를 톡톡히 받은 셈이다. 또 지난 2000년 공포영화 ‘가위’로 안병기 감독과 처음 만나 흥행에 성공한 이후 두번째 호흡 맞추기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자 그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폰’은 지난 5일 오전 관객 1백만명을 가볍게 넘어섰다. 톰 크루즈 주연에 세계적인 흥행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할리우드 흥행대작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어 당당히 흥행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원은 데뷔한 지 꽤 오래된 듯하지만 99년 KBS-2TV 드라마 ‘학교’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뎌 이제 4년차 배우다. 그런 그녀가 중견 연예인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3년 동안 남달리 분주하게 움직였고 다사다난했기 때문이다. 데뷔하자마자 안성기라는 대배우를 상대역으로 영화 ‘진실게임’의 여주인공 역을 맡았는가 하면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그 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가운데 영화 ‘동감’과 ‘가위’로 흥행배우로서의 자리를 확실히 다졌다.
그런 가운데 전 소속사와의 법정 분쟁도 겪었고 설상가상으로 영화에서 쌓은 명성을 드라마에서 고스란히 까먹기도 했다.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던 연예계 생활이 하향세를 보였던 게 불과 얼마 전의 얘기다.
그러던 하지원의 위상이 지난달 26일 영화 ‘폰’의 개봉을 계기로 확 달라졌다. 이를 계기로 영화계와 방송계에서 하지원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좋은 일이 계속되느라 전 소속사와의 분쟁도 깨끗이 해결됐다. 이제 하지원에게는 ‘승승장구’라는 단어만 남아 있다.
‘폰’은 여러 면에서 성공보다는 실패가 예상됐던 작품이다. 우선 경쟁작들이 쟁쟁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비롯해 ‘맨 인 블랙 2’ ‘라이터를 켜라’ 등 모든 면에서 ‘폰’보다 몇수 앞서는 작품들이 비슷한 시기에 스크린에 걸렸다. 또 하지원이 ‘가위’에 이어 또다시 안병기 감독과 비상업적 장르인 호러물에서 만났다는 점도 악재로 점쳐졌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출연진에는 하지원 외에는 두드러지는 이름이 눈에 띄지 않았다. 영화 한 편을 이끌어가기에 하지원은 경력이나 인지도에서 전도연이나 고소영보다 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폰’은 성공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녀는 지금 오해를 받고 있다. 하지원을 놓고 ‘공포영화 전문배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닌다. 좋아하는 스타를 살해하는 팬클럽 회장이나(진실게임), 강렬한 눈빛에 까만 머리를 늘어뜨린 모습이 인상적인 원혼(가위)의 인상이 워낙 강한데다 ‘폰’ 역시 공포영화이기 때문.
한 가지의 이미지로 굳어진다는 것은 이제 막 시작하는 배우에게는 치명적인 일이다. 배우라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길 테고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 볼 만도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해보고 싶은 역할들이 너무 많은걸요. 공포영화를 주로 맡았지만 그것은 제 연기의 한 영역일 뿐이에요. ‘폰’의 주인공 지원 역은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 중 하나였어요. 여주인공이 청순 가련형이 아니라 시원시원하고 겁이 없거든요. 우선 남성중심의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이 매력적이더라구요. ‘가위’하고 비슷한 역이었다면 안했을 거예요.”
영화계에서 흥행배우로 자리잡은 하지원의 차기작은 영화가 아닌 드라마가 될 예정이다. 하지원은 MBC-TV 새 미니시리즈 ‘해치’ 제작진에게 러브콜을 받고 있고 이외에도 새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는 많은 PD가 하지원에게 시놉시스를 건네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 특히 ‘해치’는 여주인공인 여검사 역이 하지원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하지원은 심사숙고하고 있다. 원래 안재욱이 남자 주인공이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안재욱이 연출자 교체를 이유로 의사를 번복해 남자 주인공이 비어 있어 상대배우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마음을 정할 생각이다.
하지원은 올 봄 의욕적으로 촬영한 KBS-2TV ‘햇빛사냥’에서 별로 재미를 못 봤다. 그래서 시청률과 상관없이 이번만은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방송가에 알릴 수 있는 드라마를 선택해 연말에 방송 관련 상을 한번 받아보겠다는 욕심이다. 데뷔 4년째인 그녀는 드라마?영화 양대 영역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착실히 키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