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아르바이트 실태를 말하다
사회초년생 박소산(25)씨는 생활비 또는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알바) 경험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알바는 그에게 있어 좋은 기억이 아니다. 그는 알바가 청소년의 사회경험이라기 보다 인내력 테스트라고 꼬집는다.
최초 아르바이트는 중학교 3학년 때다. 첫 알바는 대형마트 주차관리요원이었다.
“주차요원들은 서비스 교육 외 추가적인 교육을 더 받아야 했어요. 옥상 주차장 한편에, 투명유리로 되어 다비치는 부끄러운 창고에서 주차를 유도하는 요란한 동작들을 연습했습니다. 정말 창피했어요. 말을 배우는 앵무새들처럼 안쪽으로 입차하십시오~를 무한 반복해야 했습니다.”
배꼽에 두던 오른손을 태극권 하는 것처럼 반원을 그리며 들어 올려 바깥으로 쭉 벋어 올리는 아름다운 자태. 심지어 손가락을 붙여 라인을 살리는 방법들을 연구한 그는 자세가 좋다며 칭찬을 듣기도 했다.
박소산씨는 대략 한달 후 친구들과 다 같이 도망쳤다. 한 타임을 돌고 코를 파면 까만 코딱지가 나온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언제 빨았는지 시커멓고 냄새나는 옷을 입는 것이 너무 싫어서다.
두 번째 알바는 동네 작은 레스토랑이다. 첫날 그는 7시간 40분 동안 접시를 닦았다.
“밥 먹는 시간 단 15분, 화장실 간 시간 5분, 한 2시간은 버틸만 했고, 2시간은 힘들었고, 3시간 30분은 그냥 기계가 된 것 같았어요.”
다음날 그는 그 레스토랑에 나가지 않았다.
세 번째로 도망친 알바는 PC 방이다. 카운터를 보며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 기내는 애초에 무리였다. 그는 카운터에서 돈 계산을 해야했고 재떨이를 갈아야 했고, 라면을 끓어야했고, 커피도 탔어야 했으며 컴퓨터가 왜 이리 느리냐며 발광하는 초딩들을 달래야했다. 또한 야동을 보는 아저씨를 쫓아야 했고, 마우스를 훔쳐가는 중딩을 잡아야 했다.
그가 결정적으로 세 번째 알바에서 도망친 이유는 CCTV였다. 여러대의 CCTV는 그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실제 주인이 오지 않음에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었고 전화로 지시해 왔다.
“세번의 경험 말고도 도망쳐 나오고 싶었던 많은 순간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 레스토랑의 알바생들은 당연하게 참으며 접시를 닦고, 당연하게 참으며 더러운 옷을 비고, 당연하게 참으며 감시를 당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냥 도망쳐 나왔고 외면했지만 가끔 저의 외면이 그들을 여전히 부당함 속에 있도록 만들진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청년유니온이 처음 생겼을 때 반가웠고 주휴 수당을 돌려받았을 때 열광했어요. 앞으로 도망 칠 때는, 희망의 도망자 버스라도 만들어서 같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커뮤니티
아르바이트 뿐 아니라 사회가 청소년에게 관대하지만은 않다는 박소산씨. 그의 꿈은 청소년을 위한 일이다.
“지역 청소년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천안이 큰 도시임에도 청소년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두정동, 신부동 소비문화만 있죠. 인프라도 부족해요. 서울에 가지 않아도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학교 동아리처럼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는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 생각이에요.”
그가 만든 커뮤니티 중 하나는 ‘소작인 모임’이다.
친구 7명과 KYC 사업 중 도시텃밭 33㎡를 분양 받아 감자, 상추, 가지, 고추 등을 심었다.
“소작인 모임을 만들었어요. 친구들을 반강제로 참여시켰죠. 농사를 짓는 것도 재미있지만 친구들과 막걸리와 고기를 구워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좋아요.”
그가 농사를 배우겠다는 생각은 대안학교 인턴을 할 때부터다. 그가 인턴생활을 한 곳은 서울 성미산학교로 생태적 가치를 배우는 대안학교다. 그는 이곳에서 농사를 배우겠다는 생각과 함께 청소년과 만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는 박소산씨. 디자인 일도 청소년 관련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박소산씨는 남들과 똑같이 스펙 쌓기를 거부하고 그만의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방대 타이틀을 벗어나기 위해 스펙 쌓기에 열을 올려요. 일자리도 수도권을 지향하죠. 지방대를 나오고 지역에 살면 어때요. 지역에서 일거리를 찾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생각해요.”
<공훈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