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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하는 아들, 뒷바라지 하는 아내 “정말 미안해!”

인터뷰-고공농성 82일차,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부장

등록일 2013년01월1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고공농성 82일차,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부장 인터뷰

“생활비 끊긴지가 언제인지도 모르는데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과 매일 농성장으로 도시락을 싸오며 뒷바라지 하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

1월10일(목) 오후, 고공농성중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홍종인 지부장을 찾았다. 조합원들이 끈에 우편물과 사탕을 매달아 올려주고 있었다.

고공농성장은 유성기업과 인접한 자동차전용도로 굴다리 난간이다. 굴다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움막은 천으로 얼기설기 얽혀있다. 홍 지부장은 그 곳에서 겨울철 눈바람과 영하 20도 안팎의 혹한을 용케도 견뎌내고 있었다. 올 겨울 유난히 거센 한파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눈앞의 풍경을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홍 지부장이 고공농성을 벌이는 굴다리 난간에서 유성기업으로 들어서는 진입로에는 몇 개의 천막이 쳐져 있다. 천막 위에 걸쳐진 낡은 현수막과 빛바랜 글씨가 오랜 기간 농성 중임을 짐작케 했다.

홍 지부장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21일이다. 주변 논밭에서 가을걷이가 한창이던 시기에 농성을 시작해 이날로 82째를 맞고 있었다. 그동안 노동계, 시민단체, 종교단체, 정치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농성장을 찾았다.

그러나 유성기업 사태는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성기업 사태는 강도 높은 야간작업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던 노동자가 스스로목숨을 끊고, 면역력 저하로 급성 폐혈증 사망, 돌연사 등 근로자들의 사망사고가 계속되자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조합원과 이를 수용하지 않는 사측이 충돌하며 시작됐다.

다음은 홍종인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

홍종인 지회장이 위태롭게 매달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자동차전용도로 굴다리 난간에는 고속질주하는 차량소음과 함께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오늘(1월10일)이 농성 몇 일째 인지 기억 하는가?
-물론이다. 하루하루 의미를 두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오늘이 82일 되는 날이다.

▶이번 겨울은 눈도 많이 오고 유난히 추운데, 어떻게 견디고 있나?
- 견딜만 하다. 이번 겨울은 매서운 한파가 일찍부터 찾아와 적응하다 보니 웬만한 추위에는 느낌도 없다. 특히 조합원 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고 있어서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얻는다.

▶식사와 생리현상은 어떻게 해결하나?
-밥은 아내가 매일 점심에 찾아와 저녁까지 두 끼를 올려 보낸다. 물휴지로 몸을 씻고 비닐에 싸서 내려 보내면 조합원들이 처리해 준다.

▶성탄절과 연말·연초를 보내며 일반가정에서는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하며 신년설계를 할 텐데…고공농성 중인 홍종인 지부장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애틋할 것 같다.
-고공농성을 시작하기 전에 가족들에게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된 아내와 가족들이 충격과 상처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곧 현실을 받아들이며 반드시 승리해서 내려오라고 응원해 주고 있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 방학중인데, 이제 곧 중학교에 진학한다.

▶아들 중학교 진학준비도 해야 하고, 또 사춘기가 찾아와 감수성이 예민할 텐데.
- 안 그래도 얼마 전 전화통화를 했는데, 아들이 생각보다 더 성숙해서 놀랐다. 그 녀석이 하는 말이 아빠의 어려운 상황을 어찌 알고 교복 걱정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내내 용돈을 모아 저축한 돈으로 교복을 산다고. 아빠 힘내라고. 또 사야 할 물건이나 갖고 싶은 것 없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대답했다. 아빠가 이런 환경에 처해있는 사이에 아들이 어느새 불쑥 커있는 모습을 느끼며 전화통화를 하는 내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이뿐만이 아니라 동료들이 자신들도 어려울텐데, 아들 중학교 진학하는 것을 알고 조금씩 돈을 모아 교복값 하라고 전해줬다고 한다.

홍종인 지회장이 고공농성장과 연결된 끈을 이용해 우편물을 받고 있다.

홍종인 지회장이 농성장을 찾은 김선화 민주당 아산시당 위원장과 아산시의회 윤금이 시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현재 유성기업 상황은 어떤가.
-유성기업은 2011년 5월 기습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노조는 이에 맞서 공장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사측은 공권력을 투입하고, 용역을 비롯한 기업들 사이에서 노조파괴 전문집단으로 알려진 창조건설팅에 의뢰해 노조 파괴공작을 벌였다. 작년 직장폐쇄 이후 알려진 것처럼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지금도 창조컨설팅 관련 문건대로 그대로 진행되는 것 같다.
또 현재 유성기업측은 80여 명의 노조간부와 조합원들에게 4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황이다. 정부기관 역시 노조측에 1억2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조합원과 그 가족들은 직접적인 생계곤란을 헤쳐 나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손해배상 청구 등 이중삼중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저항하고 있다.

▶유성기업 사태가 해결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한채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대포차로 조합원에게 돌진해 사상자를 내고,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현대자동차가 가세하고, 외부에서 용역을 투입해 근로자를 폭행하는 등 상상할 수도 없는 불법을 저질러도 어찌된 일인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은 자본가의 편에 서고 있다.
유성기업사태는 청문회를 통해 부당노동행위와 폭력사태가 여실히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법의 잣대는 약자인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엄격하고, 회사측에는 한없이 너그러워 수사는 2년째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우리는 노동자의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잘잘못을 명확하게 가려서 처벌할 사람은 처벌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노동자다. 정당한 노동자들의 외침에 메아리가 되어 줄 사회적 연대가 절실하다.

▶ 자동차 보다 비좁은 곳에서 82일째 운동도 못하고, 추위와 싸우면서 생활하는데 건강은 어떤가.
-내가 생각해도 기특한 것이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건강상태도 양호하다. 많은 분들이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오히려 이 곳 보다 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더 걱정이다.

노란색 장판테잎으로 보수한 홍종인 지부장의 움막이 바람에 위태로워 보인다. 그는 승리해서 내려오게 된다면 동료들과의 포옹과 목욕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랜시간 움직이지 못해 지칠만도 한데 표정도 밝고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진다.
-내가 힘들고 지친다면 조합원들은 더 힘들고 더 지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쳐서도 안되고 힘든 표정을 지어서도 안된다. 또 지금 우리가 벌이는 농성은 누구의 동정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 구걸을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당당히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고공농성장에서 내려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 승리해서 내려가면 먼저 모진 고통을 어렵게 견뎌 준 조합원들 한 명 한 명 다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파티를 하고 싶다. 두 번째는 목욕도 하고 가장 미안했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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