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내리는 가로길에 선 나래(앞)와 민이. 숙연이는 어디 갔을까?
선행이 아닌, 친구와 함께 하는 생활
하얀 벚꽃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학교 안에 노란 개나리처럼 떼를 지어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교정 밖까지 울려 퍼진다.
진달래 꽃물처럼 퍼지는 노을 아래 민이와 나래, 숙연이(우민이, 정나래, 윤숙연 도고중 3년)의 수다도 교정 밖으로 까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다.
어제 엄마한테 혼나고 동생하고 컴퓨터 때문에 싸운 것까지 사소한 일이지만 봄이 되면 피어나는 꽃들처럼 쉬는 시간만 되면 피어나는 이들의 수다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 중에 좀 특이한 것이 있다. 민이와 숙연이는 두 다리로 뛰고 달릴 수 있지만 나래(지체장애 1급)는 하반신 마비로 체육시간이면 혼자 교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도고중학교(최윤재)에 벚꽃 축제가 한창이지만 민이는 줄넘기 놀이에 바쁘고 나래는 교실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줄넘기 몇 등 했어” 나래가 묻자, 민이는 “3등 했어” 푸념 섞어 대답한다. “기왕이면 1등 하지” 제 탓인 양, 나래는 아쉬움을 포옥 내쉰다.
나래와 민이의 친구 되기
나래와 민이의 또다른 점은 체육시간 뿐 아니라 이동할 때 많이 생긴다. 학교 안의 높은 턱과 계단을 오르내릴 때, 소풍갈 때도 나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다녀야 한다. 그럴 때 민이와 숙연이는 옆에서 말없이 나래의 다리가 되어 준다.
나래는 7살 때까지만 해도 두 다리로 민이와 숙연이처럼 뛰고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피아노 학원을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됐다.
“그때는 슬프지 않았어요.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옷을 사러갈 때 놀러갈 때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듯, 뭔가 다르다는 듯 보는 것이 정말 싫어요”라며 나래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털어 내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초등학교 때는 집과 학교가 가까워 엄마가 화장실까지 이동하며 돌봐 줬지만 중학교에 진학하고서 나래는 은근히 걱정이 됐다. 그렇지만 자존심 강한 나래가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민이는 “내 짝이 하반신을 못쓰는 구나 라고만 생각했지, 뭘 도와줘야겠다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어떻게 하다보니 어려울 때 함께 했을 뿐이지”하며 낯을 가리고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민이와 나래는 만났고 단짝이 됐다. 서로 두루두루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나래가 민이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하반신 마비라 때로 감각이 없는 나래를 쉬는 시간이면 으레 자기 일인양 민이는 화장실로 향하는 나래를 돌본다. 그러나 차마 고맙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계면쩍게 마주친 얼굴만 보며 서로 웃고 만다.
나래는 두 다리를 쓸 수 없을 뿐이지 여느 여중생과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책도 많이 읽고 당연히 책 속에서 나오는 직업은 다 갖고 싶은 나래. 하지만 그 꿈을 위해서 노력할 줄도 아는 청소년이다.
“장애인들은 생산품 만드는 직업만 나오더라구요. 그런 때 너무너무 화가나요. 전 다를 꺼예요. 작가나 통역가가 돼서 돈도 많이 벌고 사회의 시선이 던져준 장애를 보란듯이 꺾고 말 거예요”라며 나래는 결심이라도 하듯 두 손을 꼬옥 모은다.
나래의 꿈속 세상은 장애가 없다. 장애를 특이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민이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나래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많이 가르쳐 줘요. 전 두루두루 친구들과 친하지만 특히 튀는 것을 좋아하고 엉뚱한 나래가 좋아요”라며 나래를 평하는 민이.
수업시간에도 넘치는 끼로 엉뚱한 질문을 하는 나래를 부끄러움 많은 민이는 부러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를 특별하게 대하지 마세요’ 인터뷰 하는 도중 그들은 계속 이같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다른 청소년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데 선행으로 치부되는 것이 싫은 것이었다.
다만 누구나 헤어지고 만나기도 하는 우정을 만들어 가고 있을 뿐.
가끔 선생님들도 이들을 특이하게 쳐다보곤 한다. 착하다고도 한다. 그런 말이 있는 것조차 싫다. 신체의 한계 때문에 보는 시선이 아니라 민이와 나래, 숙연이가 꿈꾸고 또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들의 생활을 특별하게 봐 주길 원하고 있다.
따듯한 교정에 벚꽃비가 쏟아져 내린다. 매년 봄마다 내리는 벚꽃비의 은총처럼 우정의 꽃도 해마다 새롭게 핀다. 이들의 우정에 필요한 것은 장애를 부담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장애인도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불편한 시설물을 고쳐주는 사람들의 애정 뿐이다.